<데스크라인>IT 월드컵

 ◆이윤재 IT산업부장 yjlee@etnews.co.kr

 

 지구촌 최대의 축제로 불리는 월드컵 개막이 드디어 이달말로 다가왔다. 그것도 월드컵 사상 유래가 없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 개최된다. 또 온 국민은 16강 진출에 대한 기대와 성원으로 한층 고조돼 있다. 개막식이 열리는 서울 상암경기장 주변은 꽃단장으로 한창이고, 경기장을 마주 보는 한강에는 오색 찬란한 물줄기를 뿜어내는 분수대가 장관이다. 정부와 기업들도 수조원에 이르는 경제적 파급효과를 기대하며 월드컵 마케팅 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 중에서도 정보기술(IT) 분야의 마케팅과 홍보는 초고속인터넷만큼이나 빠르고 활발하다.

 국가 최고정보책임자(CIO)임을 자처하는 정보통신부는 이번 월드컵을 통해 한국의 IT와 시장이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음을 확실히 보여줄 태세다. 경기장면이나 속보 등을 즉석에서 보낼 수 있도록 통신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우선 기본이다. 그것도 별도의 인터넷 연결선없이 무선으로 전송할 수 있도록 했다. 뿐만 아니다.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3세대 이동통신서비스를 실시, 이동전화로 월드컵 중계를 볼 수도 있다.

 국내 24개 축구경기는 모두 고화질의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된다. 따라서 필요한 정보는 수시로 확인할 수 있다. 교통·관광·숙박·쇼핑·경기장 등의 정보를 외국어로 검색할 수 있는 서비스도 준비했다. 공항이나 호텔과 같은 길목에는 고선명 디지털TV를 설치해 한국의 IT력을 외국인들에게 유감없이 보여줄 예정이다. 외국인들이 자국에서 사용하던 이동전화를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자동로밍서비스도 실시한다. 이번 월드컵 기간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몰려들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 관광객을 겨냥해선 보다 특별한 메뉴를 제공한다. 다양한 IT 체험의 기회를 중국 관광객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물론 한국과 중국 현지에서 공동 CDMA 서비스를 시연하는 등 한차원 높은 이동통신기술을 선보인다. 중국이 최대 IT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점을 그대로 지나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월드컵을 ‘IT월드컵화’하겠다는 의지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다만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이런 IT서비스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자칫 전시수준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남아있다. 예를 들어 공중망 무선랜을 이용하려면 한 경기당 30만원 넘게 지불해야 하며 노트북PC로 데이터통신을 이용하기 위해선 별도로 10여만원을 들여 무선모뎀(PCMCIA)을 구입해야할 상황이다. 외국인이 쓸 수 있는 콘텐츠도 크게 모자라 세계에서 가장 앞서있는 IT경연이 그저 구경거리로 전락할 수 있다. 반찬이 아무리 좋아도 맵고 짜서 먹지 못하면 헛수고인 것이다.

 요즘 아침마다 톱뉴스를 장식하는 대통령 아들을 비롯한 지도층 비리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대통령 선거 등은 IT 외적인 복병이다. 지난 88올림픽을 통해 국가경쟁력이 한단계 올라갔듯이 이번 월드컵도 우리 경제가 재도약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특히 IT의 경우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뒤를 쫓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선도한다는 점을 확실히 보여주고, 국내기업들이 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의 이슈는 정치와 비리의 사슬속에서 꼼짝 못하고 있다. IT월드컵은 그저 월드컵 한 켠에서 벌어지고 있는 조그만 뉴스로 취급되고 있다.

 초고속인터넷이 우리의 생활을 바꿔놓고 있는데도 그다지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외국은 지금 ‘e코리아’를 벤치마킹하겠다고 난리인데 우리의 관심사는 여전히 정치판이다. IT월드컵을 정부의 한 부처나 몇몇 IT기업들의 일거리로 치부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IT월드컵이 성공할 경우 당장의 경제적 효과는 차지하고 세계시장에서의 위상이 어느 수준으로 올라갈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달라질 것이다. 지금은 국민의 관심을 돌릴 때다. 더이상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