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재 IT산업부장 yjlee@etnews.co.kr>
우리나라 기업은 소유와 경영이 거의 일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기업들과 비교되곤 한다. 대주주가 직접 기업을 경영해야 안심하고 대리인(전문경영인)을 내세우더라도 중요한 결정은 대주주의 몫이어야 한다. 주주를 중시하는 경영 차원을 넘어서서 대주주가 곧 경영까지 도맡는 식이다. 그러나 미국기업들은 주주들이 전문경영인을 내세워 경영의 책임과 권한을 위임하는 게 일반화돼 있다. KT 민영화가 새삼 핫이슈로 떠오른 것도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첫 사례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하는 점 때문이다.
정부와 KT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전문경영인 체제의 도입을 이번 민영화의 대원칙으로 삼고 있다. 비상임이사의 비율을 높여 사외이사 중심의 이사회를 구성, 특정 주주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주주들의 목소리를 경영에 반영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투명한 사외이사 선임 절차와 견제 및 감독권한의 강화를 통해 이사회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장치도 마련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전문경영인의 책임경영을 강화하여 수익성에 입각한 사업추진, 시장상황에 맞는 스피드 경영, 투명경영을 통한 경영효율화로 기업가치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려 세계 초일류기업이 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정보통신업계 안팎에선 이를 액면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같다. 우선 공기업 노조 중 민영화에 가장 협조적이었던 KT 노조는 KT를 특정 재벌이 소유·경영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이번 민영화안에 반대하고 나섰다. 업계 분위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의 KT 민영화 확정방안이 발표된 다음달 이상철 KT 사장은 전략적 투자자들을 의식한 듯 “교환사채(EB) 만기를 1년 이내로 단축할 수도 있다”고 말해 KT의 지배주주화 가능성을 더 앞당길 수 있는 여운을 던지기도 했다. 즉 1년내에 KT 지분 15%를 보유한 기업이 나타날 수 있음은 물론 우호세력을 동원한 적대적 인수합병(M&A)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KT의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을 경우 통신업계뿐만 아니라 국가경제까지 좌지우지하는 거대공룡이 탄생한다는 점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KT의 통신 인프라는 다른 통신사업자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하다. 또 이러한 인프라는 단순히 정보통신시장 경쟁에서의 우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보기술(IT)을 바탕으로 한 미래의 전략사업 부문에서 그 어떤 국내기업도 KT를 소유한 기업에 대적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단적인 예로 현재 전국의 모든 가정에 들어가있는 전화가입자 정보는 KT를 소유한 기업의 다양한 타깃마케팅 용도로 활용될 수 있다. KT의 실질적인 회계분리가 선행돼야한다는 지적도 이 때문에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통신산업의 구조적 특성이기도 한 주파수 규제 등을 동원해 KT 민영화 이후에도 견제와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또 현재 7명인 비상임이사를 9명으로 늘리는 등 사외이사의 기능을 강화함으로써 특정 주주의 전횡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KT를 독식하는 거대기업이 등장하기란 현실성이 매우 낮다는 판단이다. 그러면서도 이번 KT 민영화의 성패를 가늠할 수도 있는 전략적 투자자(대기업)의 참여를 유도하는데 안간힘을 쏟고 있다. 정부의 KT주식을 원활히 매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전문경영인체제를 유지해 특정 기업이 KT를 점령하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KT 민영화는 국내기업의 오랜 경영체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시금석이 될 수도 있고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래서 민영화 이후가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