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악순환의 고리` 끊어라

 정권말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연속극이 또 시작됐다. 재방송도 아닌데 어찌 이렇게 똑같은 내용의 비리 드라마를 5년 주기로 틀어주는지 신기할 정도다. 빗나간 젊은 정치지망생으로 인해 통수권자 집안이 거덜나는 것도 이젠 정말 진절머리 나는 일이다. 우리나라가 아니면 보기 힘든 광경이지만 어찌하랴. 아무리 닦아내도 지워지지 않는 몽고반점을.

 문제는 경제다. 정치적 패닉현상을 보면서 정작 정치를 걱정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이 여파가 혹시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특히 IT업계 CEO들의 우려는 보다 구체적이다. “한때 내수확대 정책에 힘입어 회복국면 운운했던 경기는 빠르게 가라앉고 있다. 공급과잉에 따른 투자위축 분위기가 여전히 강해 경기상승의 탄력을 좀처럼 받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5%대에서 3%대로 크게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여기에다 각종 게이트까지 겹칠 경우 또다시 회복불능사태가 올까봐 우려된다.”(유력 SI업체 K 사장)

 중소벤처들도 앞으로 핵폭풍처럼 더 터져나올 게이트들이 외풍에 약한 자신들을 크게 위협할 것으로 조바심내고 있다. “정권초기 대기업의 군기를 잡기 위해 무분별하게 벤처를 육성했던 정부가 말기에 들어서면서 각종 게이트의 주인공으로 벤처를 내세워 희생양을 만들고 있다.”(벤처협회 한 임원) 물론 이 지적은 전적으로 수긍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우선 비리의 속성상 한쪽의 일방적인 강요보다는 양자의 필요성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일부 몰지각한 업체가 저지른 사건을 전체로 객관화시키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악순환처럼 반복되는 이같은 게이트사건의 일차적인 책임은 정치에 있다는 사실이다. 결코 삐에로 역할을 한 기업들에 면책특권을 주자는 얘기가 아니다. 양비론은 늘 해결책 강구를 어렵게 하기 때문에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자는 것이다. 그간 기업에 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정권과의 관계에서 특혜 아니면 불이익을 택해야 하는 게 현실이었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앞으로 닥칠 힘(정권)의 공백상태에서 우리 경제가 얼마나 더 망가질지를 염려하는 사람보다 오히려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의외로 많다. 무엇보다 힘의 진공상태를 계기로 권력과의 단절 시도가 힘을 얻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속으로는 새로운 정권창출세력으로의 줄서기가 진행될지 모르지만 일단 겉으로는 힘있는 자와의 거리두기 노력이 그 어느때보다 활발하게 진행될 것이고 여기에서 권력형 기업비리의 악순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단초를 찾을 수 있다는 기대다.

 더욱 다행스런 것은 이 비리드라마가 한창 진행될 시기에 한켠에선 10년후에 뭘 먹고 살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는 축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진정한 희망을 찾는다.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은 계열사 사장단을 모아 놓고 10년후 그룹을 먹여살릴 대안을 내놓으라고 호통을 쳤고 SK 최태원 회장은 미래전략(To Be)모델을 연구하라고 그룹CEO들에 강력하게 주문했다.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지 말고 앞으로 먹고 살 것을 항상 챙기라는 그들의 주문은 대통령 아들들의 이름보다 훨씬 신선하게 들린다. 그들이 한창 잘나가는 그룹의 총수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떻게 시장을 개척하고 어떻게 이윤을 창출할까를 고민하는 이 땅의 크고 작은 기업의 CEO들이 다음 선거를 걱정하는 정치인들의 모습보다 믿음직해 보이는 것과 같은 이유다. 미래는 그들의 몫이다.

 이제 기업이 더이상 비리드라마의 삐에로를 맡아서는 안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않는 한 우리의 미래는 없다.

 <김경묵 기획심의부장 km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