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삼성과 소니

 ◆이택 정보가전부장 etyt@etnews.co.kr

그래도 안심이고 역시 삼성은 달랐다. 두번 다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사실 기우(杞憂)에 가까운 일이지만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는 삼성이 이번에는 또 어떤 사단을 벌일까 걱정이었지만 이건희 회장이 잘랐다. 그는 용인에서 전자계열 사장단과 구조본 고위임원들을 소집한 자리에서 “잘 나간다고 자만하지 말자. 더욱 몸을 낮추고 긴장하자. 차세대 핵심사업에 역량을 집중하자”고 강조했다.

 몇 년전 삼성전자의 연간 흑자가 2조원을 넘어서고 온 나라가 반도체 착시현상으로 들떠 있었을 때 삼성은 그 여력을 자동차산업 진출이라는 곳에 쏟아 부었다. 대부분의 전문가와 심지어 그룹 내부에서조차 반대 여론이 있었지만 ‘삼성이 하면 다르다’라는 ‘자신감’과 ‘사명감(?)’을 앞세워 기어이 자동차산업에 뛰어들었다. 물론 그 바탕에는 ‘삼성은 뭐든지 해낼 수 있다’는 당시의 기업 실적이 밑바탕이 됐다. IMF를 겪으면서 사정은 변했고 그 이후 상황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다.

 공교롭게도 지난해와 올해 비슷한 환경이 재연됐다. 삼성전자의 연간 순익이 3조원(지난해)에 육박하고 올해는 6조원을 상회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더구나 이같은 실적은 반도체 침체기임에도 불구하고 정보통신, 디지털가전 등 소위 고부가 제품의 약진으로 일궈낸 것이다. 질적으로도 세계 최강 기업군에 당당히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수준이다. 1분기에는 매출, 수익률 등 대부분의 지표상 명실공히 ‘세계 IT 빅4’에 자리매김했다. 자신감 아닌 자만감에 젖은 삼성이 이번에 어떤 사업 전략을 펼칠지 궁금했지만 이 회장이 용인 발언으로 대답을 줬다.

 해외 언론들은 앞다퉈 삼성을 해부하고 있다. 심지어 삼성의 성공이 국가 이미지와 신용도 향상에 영향을 준다는 분석도 나왔다. 언론의 포커스는 전자업체의 대명사인 일본 소니와의 비교에 맞춰져 있다. 삼성의 지난해 수익이 소니의 20배에 이르고 올 1분기에도 이같은 추세는 이어졌다. 중저가 제품 구조가 휴대폰에서는 최강 노키아보다 비싼 제품으로 탈바꿈, 유럽에서는 삼성 브랜드가 명품 대열에 올라섰다는 보도도 있다. 소니의 최고 경영자조차 ‘삼성 견제하기’와 ‘삼성 배우기’에 신경을 쓴다고 한다. 하지만 삼성이 소니를 추월했을까. 실적만 놓고 보면 그런 평가도 가능하겠지만 기업 전체 역량을 따지면 아직은 겸손해야 한다. 양사의 보유기술이나 브랜드력에선 아직도 차이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진정으로 삼성이 소니와 견주려면 이 회장의 말을 실천으로 옮기면 된다.

 삼성전자는 소니의 워크맨이나 베가TV, 방송장비처럼 세계적인 히트상품이 부족하다. 가장 근접한 것이 휴대폰이지만 소니가 누리고 있는 여타부문에서의 독점적 지위와 브랜드 파워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다. 핵심사업에 역량을 총동원해야 하는 이유다. 덩치는 ‘IT 빅4’이면서도 조직은 내수형인 것도 하루빨리 극복해야 할 과제다. 삼성전자의 비즈니스 영역이 전세계라는 점에서 삼성은 분명 글로벌기업이다. 그럼에도 해외 법인장들은 아직도 본사에서 파견된 한국인들이다. 글로벌라이제이션과 로컬라이제이션은 동전의 앞뒷면이다. 현지 밀착, 토착경영이 핵심이라면 삼성의 해외 법인도 현지인 책임자가 속속 등장해야 한다. 소니코리아 사장은 한국인이다. IBM, 마이크로소프트, HP 등 IT 빅10의 한국법인장은 죄다 한국인이다. 본사 임원 가운데 외국인이 거의 없다든지(최근 1명이 탄생했다), 여성 고위 임원을 찾으려면 현미경으로 모자라는 점도 어딘지 초일류기업 삼성의 위상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삼성전자는 좋건 싫건 한국 대표기업이다. 해방 이후 처음으로 소니와 비견되는 기업을 갖게 된 것에 자부심도 느낀다. 그래도 지금은 샴페인을 터뜨리며 도취할 때가 아니다. 소니와 견주려면 아직도 먼 길을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