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IT부처 `죽음의 조`

 4일 한국과 폴란드전 월드컵 경기에 온 나라의 시선이 쏠려 있지만 전세계 축구팬들은 소위 ‘죽음의 조’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잉글랜드, 스웨덴,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가 맞붙는 F조는 우승보다 16강 진출이 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난형난제의 격돌이 예상된다. 우리 정부에도 ‘죽음의 조’라 불린들 전혀 손색(?)없는 부처들이 있다. 국가 IT정책을 둘러 싼 유관부처, 즉 산자·정통·과기·문화부가 그들이다. 이들은 내년 2월 신정부 출범시 필연적으로 ‘정부조직 통폐합’이라는 과제와 맞닥뜨릴 것이다. 부처간 영역갈등이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조정’은 불가피하다. 게다가 관료조직의 특성이 ‘끊임없는 자기증식’인 판에 밥 그릇 차원이 아닌 부처 전체의 존폐가 걸린 문제라면 ‘IT 죽음의 조’에 몰려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IT 죽음의 조’에서 과연 누가 살아 남을까. 일단 외형적 전력은 정통부와 산자부가 한수 위다. 문화부와 과기부는 IT분야에 ‘발을 걸친 정도’라는 점에서 처진다고 실망할 일은 아니다. 부담도 그만큼 덜하다. 산자-정통부는 사정이 다르다. ‘젊은 사무관들’의 사기 문제에서부터 부처의 위상, 존립 근거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연말 대회전을 앞두고 물밑에서 여론 끌어오기 경쟁이 치열하다.

 절실한 쪽은 정통부다. 산자부야 IT사령탑으로 등극하면 좋고, 설사 잃는다해도 상당한 타격은 있겠지만 부처 존립까지 들먹일 수준은 아니다. 정통부는 다르다. 항간에 떠도는 것처럼 ‘산자부로의 합병설’이 현실화되는 것은 꿈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펄쩍 뛰는 것도 조직 전체가 걸린 문제기 때문이다. ‘16강 진출’의 스트레스는 정통부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전력상 정통부의 입지는 확고해 보인다. 그간 국가 정보화 정책의 총괄부처로 축적한 정책 노하우와 뛰어난 성과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IT분야에서 강고한 기득권을 확보하고 있는 최강팀 정통부의 아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것으로 예상하는 전문가도 없다. 정통부에 비해 실탄(정보화촉진기금)도 부족하고 인력 규모도 따라가지 못하는 산자부는 ‘기업 밀착형 정책’을 앞세워 정성을 다할 뿐이다. 부처 환경상 IT에 관한한 산자부는 열세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공이 둥글듯 진검승부의 결과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다. 정통부의 위상은 역대 정부의 정책 아젠다, 즉 ‘국가 정보화’라는 테제를 선점하고 이끌어왔기에 가능했다. 또 정보화촉진기금이라는 엄청난 화력의 무기도 큰 힘이 됐다. 그런데 ‘정보화’라는 아젠다는 더 이상 먹히질 않는다. 이미 세계 최강 수준의 인프라를 갖춘 나라가 됐다. 정촉기금 역시 규모가 차츰 줄어들고 있다. 산자부도 비벼볼 언덕이 마련된 셈이다. 더욱이 일본이나 중국조차 정통부 조직을 분산 해체했거나 추진중이다.

 토털축구가 아트사커에 자리를 내주었듯 IT 죽음의 조에 속한 부처들은 21세기 패러다임과 국정 우선순위를 제대로 읽고 새로운 아젠다를 발굴해야 한다. 과거에 집착하면 16강 탈락의 쓴 잔이 기다리고 있다. 물론 그 아젠다의 성패는 누가 국가와 국민의 소리를 제대로 반영하고 그들에 가까이 갈 수 있느냐로 결정될 것이다.

<이택 정보가전부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