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어제,오늘,그리고 내일

 ◆이윤재 IT산업부장 yjlee@etnews.co.kr

 

 어제는 ‘대∼한민국’의 함성이 ‘투표 먼저’로 바뀐 날이다. 그리고 오늘은 월드컵 16강 진출을 결정짓는 운명의 날이다. 내일은 노벨평화상을 안겨준 6·15 남북정상회담 2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렇게 온 국민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일이 3일 연속 이어지는 경우도 극히 이례적이다. 우리에게는 모두가 중요하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이다.

 먼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보자. 사실상 앞으로 4년간 삶의 질을 결정해야 하는 중대사다. 지난 4년간의 실망을 생각하면 더더욱 참신한 인물을 뽑는 데 앞장서야 할 상황이다. 하지만 이번 지자체 선거는 그다지 국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월드컵 열기에 파묻힌 게 첫번째 원인이다. 월드컵은 정치에 식상해있는 국민들에게 훌륭한 청량제가 되고 있다. 마치 억눌린 불만을 터트릴 수 있는 분출구를 찾은 듯 온 국민의 열정이 ‘붉은 티셔츠’에 모아졌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인물을 뽑아야 하는 것도 부담이 됐다. 누가 누군지조차 분간하기 어렵다는 게 많은 유권자의 반응이다.

 오늘 저녁의 결전에 대해선 다양한 얘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어떻게 하면 16강에 갈 수 있고, 더 잘하면 8강에도 가고, 내친김에 4강까지도…. 그러면서도 포르투갈과 폴란드 경기를 관전한 국민들은 포르투갈을 이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포르투갈 후유증까지 거론되기도 한다. 히딩크 감독에 대한 기대는 그래서 더욱 커져가기만 한다. 내일의 6.15 2주년은 사실 안중에도 없다. ‘포르투갈을 이기거나 비기기만 한다면’ 하는 생각에 꽉 차 있다. 16강 진출만 한다면 또다른 노벨평화상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듯한 분위기다.



 그래서 월드컵 16강 이슈는 어제의 지자체 선거와 함께 내일의 6.15 남북정상회담 2주년도 조용하게 만들고 있다. 2년전 평양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트랩을 내려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서로 포옹했을 때 남북한 온 국민은 뜨거운 눈물을 감추지 않았다. 그만큼 역사의 획을 긋는 대사건일뿐 아니라 억눌린 국민의 기대를 한층 고조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사상 처음으로 우리나라 사람(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는 또다른 역사를 만들어냈다. 그런데도 6.15 2주년이 이처럼 조용하고 차분한 까닭은 지자체 선거와 마찬가지로 월드컵이 첫번째로 꼽힌다.

 이는 또 어제는 IMF 극복을 위한 벤처육성(코스닥시장 활성화), 오늘은 시련과 기대, 내일은 노벨평화상처럼 생각하기 싫은 현실과 흡사해 보인다. IMF가 터지자마자 온 국민이 금모으기를 통해 단합된 힘을 보였고, 이어 국민의 정부가 혼신의 힘을 기울여 IMF 조기졸업이라는 국내외 뉴스를 만들어 냈지만 지금은 그 후유증을 감내해 나가고 있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 기업들을 중심으로 한 국제금융 불안을 느끼면서. 또 오늘의 월드컵은 우리나라를 IT월드컵으로 자리매김케 하는 기폭제로 적지 않은 기대를 갖게 한다. 내일에 대한 기대가 어제의 지자체 선거보다, 연말의 대선보다 바로 오늘에 있는 것이다. 지금 IT는 꽁꽁 얼어붙은 시련을 겪으면서도 세계속의 내일을 기다리고 있다.

 지자체장이 누가 됐던, 대통령이 누가 됐던 더이상 관심사가 아니다. 온 국민이 금을 모으듯, ‘아∼대한민국’을 외치듯 힘을 합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IMF와 월드컵은 보여줬다. 정치가 스스로 탈바꿈하지 못하면 국민이 바꿔놓는 것인가 보다. 그래서 어제의 일이 오늘을 만들며, 기대와 우려속에 내일을 기다리는 게 바로 역사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