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는 끝났다.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그것도 사상 처음 한국과 일본 양국이 공동으로 개최한 지구촌의 잔치는 전 세계인에게 한편의 영화처럼 가슴 뭉클한 감동을 전해주며 그 화려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번 월드컵은 그러나 우리에게는 단순한 축구대회가 아니었다. 태극전사들이 축구강호라 불리는 팀들의 골대 안으로 시원스레 공을 몰아 넣을 때마다 우리는 더 이상 작고 힘없는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또 붉은 악마로 대표되는 한국민의 길거리응원은 전 세계인을 경악시키며 우리에게는 한국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다시 한번 불어넣어준 소중한 기회를 제공했다.
특히 개막식과 대회 운영중에 푸른색의 눈을 가진 손님들에게 감히 자랑할 수 있는 첨단 IT기술과 IT인프라를 보여주면서 형언할 수 없는 가슴 뿌듯함을 느끼게 해주기도 했다.
본지가 월드컵 개막 100일 전부터 이번 2002 한일월드컵을 IT월드컵으로 규정하고 특별취재팀을 가동하면서 전 세계인에게 한국의 우수한 IT기술과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소개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다행히 정부도 이같은 인식에 공감해 우리의 IT수준을 전 세계에 알리는데 집중함으로써 디지털코리아의 위상을 한차원 높이는데 성공했다.
실제 월드컵을 마무리하면서 본지가 IT기업 CEO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이같은 정부와 기업, 언론의 노력이 이번 월드컵을 통해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많은 실익을 거두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는 월드컵을 성공리에 마무리했다고 자랑하기에 앞서 월드컵을 통해 전 세계에 파급된 디지털코리아, IT코리아의 이미지를 어떻게 실익으로 연결시킬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동안 누차 지적했듯이 월드컵의 개최나 본선에서의 선전이 해당국 경제성장에는 별다른 실익을 주지 못하며 오히려 마이너스성장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전례와 6월 수출실적이 예상치에 크게 못미치고 있다는 정부의 발표는 우리에게 월드컵의 영광과 환희를 천천히 음미할 수 없음을 일깨워 준다. 본지 7월 1일자 1면 참조
성공적인 월드컵의 이면에 갈수록 악화되는 우리의 경제를 걱정하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것도 이같은 전례를 밟지 말자는 당연한 충고일 수 있다. 다행히 정부차원의 포스트월드컵 대책이 속속 마련되고 있지만 이같은 일련의 대책이 분위기에 들뜬 일회성정책이 아닌지 되새겨 보자.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가 정부와 국민의 몫이었다고 한다면 포스트월드컵의 중심은 당연히 기업이다. 그것도 이번 월드컵을 통해 전세계인의 가슴에 각인된 IT코리아 브랜드를 활용할 수 있도록 IT기업들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이 마련돼야 한다. 모든 부문에서 1위를 할 수 없는 만큼 전략제품을 집중 육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는 당연히 IT제품이 적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진 우리의 IT기술과 이미지를 경제 활성화의 축으로 삼기 위해서는 해결해야할 과제가 남아 있다. 첫째는 IT기술 및 제품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다. 첨단 IT분야는 성숙시장이 아니라 이제 막 개화하는 시장이다. 따라서 당장의 효과보다는 미래지향적인 생각과 이를 바탕으로 한 정책적인 지원과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 지난해 10월부터 본방송이 시작돼 이번 월드컵을 통해 개화된 HDTV나 월드컵 개막식에서 세계 처음 상용화된 모습을 전 세계에 과시한 IMT2000 등은 바로 우리가 새롭게 만들어가야 할 시장이기 때문이다.
내수시장의 활성화도 우선과제다. 디지털 신제품을 중심으로 한 IT 내수시장은 본격적인 제품수출에 앞서 ‘테스트베드(test bed)’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수시장의 활성화는 곧바로 수출을 확대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프로젝션 TV에 적용되고 있는 특별소비세를 폐지함으로써 수요를 창출해가고 무선인터넷 이용요금을 대폭적으로 인하해 수많은 콘텐츠개발업체들을 키워가는 것 등이 구체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월드컵은 많은 것을 우리에게 남기고 끝났다. 그러나 IT기업들의 잔치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양승욱 엔터프라이즈부장 swy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