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기업의 생존 조건

 ◆서현진 e비즈니스부장

마이크로소프트(MS)의 주력사업은 PC용 운용체계(윈도)와 이를 지원하는 애플리케이션이다. 두 부문의 지난해 매출은 전체 70%인 178억달러에 이른다. 이익률도 46%로 세계 최고다. 시장점유율도 각각 91%와 95%로 사실상 독점이다.

 그런데 MS가 최근 내놓은 신성장전략은 오는 2006년까지 두 부문의 매출 비중을 50% 이하로 줄이는 것으로 돼 있다. 윈도 등이 이미 사용자에 익숙해져(로크인) 있어 가만히 있어도 떼돈을 벌어들일 수 있게 됐는데도 말이다.

 대신 MS는 아직 성장성이나 성공률이 담보되지 않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토에 도전하고 나섰다. 그 하나는 ‘소프트웨어에서 서비스로’이고, 또 하나는 ‘PC에서 포스트PC로’라는 것이다. 이 새로운 실험은 전자의 경우 웹서비스로, 후자는 ‘미라’나 ‘태블릿PC’와 같은 차세대 플랫폼 개발을 통해 각각 구체화되고 있다.

 웹서비스는 기존 애플리케이션을 인터넷에서 통합처리하는 새로운 소프트웨어 패러다임이다. 미라는 이른바 ‘e홈’ 전략을 구현할 스마트 디스플레이고, 태블릿PC는 무선모듈과 전자책(e북) 등의 기능이 기본 채택된 업무용 플랫폼이다.

 MS가 갑자기 이런 전략을 들이댄 것은 PC환경에 대한 몇 가지 변화 때문이다.

 우선 PC시장이 신규보다 대체수요 위주의 성숙단계로 바뀌고, PDA나 스마트폰 같은 포스트PC시장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로는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수요가 급감하고, 웹서비스가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는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통한 업무생산성보다 엔터테인먼트나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하는 사용자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PC의 역할이나 성능 개념이 바뀔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들이다. MS는 철저한 자기 분석을 통해 이런 변화들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좀 다른 얘기지만 삼성도 시장흐름을 읽는 데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정평이 나 있다. 삼성에는 ‘시장변화를 먼저 보고(先見), 남보다 한발 앞서 움직여(先手) 경쟁자를 제압하고(先制), 시장을 먼저 차지한다(先占)’는 의미의 ‘4선(先) 전략’이라는 게 있다. 이를 토대로 삼성은 지난 97년, 모든 사업 내역들을 씨앗형·묘목형·과수형·고목형의 4가지 유형으로 나눴다.

 씨앗형은 5∼10년 후 결실이 예상되는 이동통신시스템, 네트워킹, 비메모리 등의 사업으로서 기술·돈·인력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묘목형은 당장 수익은 없지만 기술개발과 마케팅을 강화하면 시장지배 가능성이 높은 디지털TV·PDA·TFT LCD 등을 꼽았다. 현재 성장을 이끌고 있는 과수형 사업은 강점을 더욱 강화하여 확고한 1위를 고수할 분야로서 대형 컬러TV·노트북·휴대폰·메모리 등을 선정했다. 고목형은 말 그대로 성장을 멈춘 소형가전·오디오·MP3·전력용반도체 등으로 이들 사업은 과감하게 정리하기로 했다.

 5년 여가 지난 현재 삼성의 사업들은 씨앗형은 묘목형으로, 묘목형은 과수형으로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삼성은 지금 다시 5∼10년 후 묘목형이 될 새로운 씨앗형 사업을 찾고 있는 중이다.

 70년대 초 한국의 30대 그룹 가운데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고작 2, 3개 뿐이다. 멀리 갈 것 없이 IMF 직전인 5년 전 30대 그룹도 현재 명맥을 유지하는 곳은 절반 정도다. 하물며 산업별, 마켓별 지배 기업들의 부침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앞으로 5년 후 시장지배적 기업들의 판도는 또 어떻게 변해있을까. 격변기에 살아 남으려면 치열한 자기분석이 필수조건일 터다. 자신을 모르는데 어떻게 시장과 기술흐름을 읽고 시대를 관통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