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정통부 CEO

 기업은 어려울 때 구조조정을 한다. 그리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다. 비용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매출이 올라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국민이 잘 먹고 잘 사는 게 국정운영의 기본 메시지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장이 중요하다. 기업의 CEO는 물론이고 한 나라의 대통령이나 각 부처의 장관이 어떤 인물이며, 어디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전체의 운명을 갈라놓을 수 있다.

 이 시대는 그래서 전문가를 더욱 갈구한다. 국민이 뽑든, 위에서 임명하든, 주주가 선임하든 전문지식과 혜안을 가진 리더를 요구한다. 전세계를 놀라게 했던 우리나라의 월드컵 4강진출도 히딩크라는 전문가가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온 국민은 공감한다. 동시에 IT월드컵은 양승택과 이상철이라는 전문가가 앞장섰기에 국가 이미지를 몇단계 끌어올리는 동력이 됐다.

 그리고 IT월드컵을 성공시킨 두 사람은 이제 정치적 이해에 따라 한 사람은 리더의 굴레에서 벗어났고 다른 한 사람은 더 무거운 짐을 떠안았다. 그것도 최단기 정통부 장관의 운명을 예견하면서. IT월드컵의 행동대원역(KT)을 거뜬히 소화해낸 공로가 이 정권의 막차에 편승하는 선물(?)로 돌아온 것일까.

 사실 이상철 장관의 경력이나 역량 등에 비추어 볼 때 7개월짜리 정통부 수장으로는 아깝다는 지적이 있다. KS(경기고·서울공대)마크를 달고 미국 듀크대에서 공학박사를 획득한 전형적인 엘리트 과정을 밟은 후에는 NASA 통신위성을 설계하는 등 전문경력을 바탕으로 한국통신프리텔(현 KTF)과 KT를 이끈 통신업계의 대표적인 CEO다. 특히 거함 KT호를 단기간에 장악하는 카리스마를 발휘했으며 KT민영화를 절묘하게 성공시킨 인물로 회자된다.

 그런데도 그에게서 큰 기대를 걸지 못하는 까닭은 뭘까. 짧은 임기 때문일까. 정통부의 막강한 규제기능을 생각하면 임기는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그보다는 뭔가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듯하면서 정통부와 통신업계 주변을 움직이는 존재같은 게 그를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다.

 국민의 정부들어서 정통부는 다른 부처와 달리 민간 전문가의 시험무대처럼 여겨졌다. 배순훈, 남궁석, 양승택 전 장관 등 글로벌 전문가로 손색없는 민간출신의 인물들이 정통부를 거쳐갔다. 98년 3월 당시 대우전자 배순훈 회장을 정통부 장관으로 발탁했을 때 업계는 물론 정가에도 신선한 충격처럼 받아들여졌다. 배순훈 회장의 ‘글로벌 리더십이 정통부에 접목될 수 있다면’하는 기대가 충만했다. 그리고 그는 정통부 CEO임을 자처하면서 부처의 체질개선과 함께 우리나라 IT경쟁력 제고방안을 모색했지만 뜻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하차했다. 남궁석 전 장관(현 민주당 의원)은 좀 달랐다. 나름대로 대기업에서 쌓은 카리스마와 함께 타협의 지혜를 발휘했다. 기업의 순발력을 관료조직에 심어주지 못한 채 말이다. 안병엽 전 장관의 바톤을 이어받은 양승택 전 장관은 취임초기부터 통신3강체제 구축과 유효경쟁환경 조성 등을 역설했으나 그도 결국은 뜻을 성사시키지 못하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굳이 이들의 반열에서 이 장관을 가늠한다면 남궁 의원쪽에 가까워 보인다. 그의 카리스마에 비춰 볼 때 관료조직과의 타협은 아니겠지만, 남궁 의원처럼 정치쪽으로 옮아가는 수순을 밟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정치인이 되든, 다른 장관들처럼 학계나 업계로 돌아가든 지금으로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가 장관취임 직후 “후임 KT 사장으로 글로벌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면 좋겠다”고 한 말의 의미를 스스로 실천을 통해 보여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윤재·IT산업부장 yj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