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오래 전이지만 월드컴의 근로자들이 스톡옵션을 받았을 땐 한결같이 기쁨의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스톡옵셥으로 블루칩을 받는다는 것은 적지않은 수혜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월드컴의 주가가 3년 전 69달러에서 2년 전 48달러, 1년 전 15달러, 또 최근에는 10센트까지 떨어지는 것을 지켜본 그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16년 동안의 피와 땀, 충성은 이제 한푼의 가치도 없는 퇴직계획만 남겨두고 있다”는 월드컴 한 근로자의 말은 그들의 비탄을 잘 대변하는 듯하다.
미국 2위의 장거리전화업체 월드컴이 이 같은 지경에 처한 것은 MCI와 같은 거대 기업을 무리하게 인수한 데 이어 지난 6월 말에 발생한 희대의 사기극인 회계부정 사건이 결정타가 됐다. 그들은 실적을 부풀려 주가를 올리기 위해 지난해 초부터 올해 1분기까지 5분기 동안 발생한 무려 38억달러의 지출을 자본투자로 조작해버린 것이다.
“미국 경제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건강하다”고 5년 전 미국 덴버에서 열린 선진 8개국 정상회담에서 빌 클린턴은 자랑했지만 조지 부시 대통령은 “미국은 이제 그런 말을 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영국의 유력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꼬집고 있는 것에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월드컴 사태는 미국에서 발생했지만, 마치 투하된 핵폭탄이 넓은 지역을 오염시키듯 세계 경제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고약하다. 그것은 주식폭락은 물론이고 경기회복을 기대하는 기업인, 투자가, 일반 국민의 기대조차도 한순간에 날려버리고 있다. 경기회복에는 경제나 경기에 대한 신뢰가 중요한 펀드멘털 가운데 하나인 데도 그것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선순환으로 전환되는 듯한 경기 국면이 악순환으로 바뀌지나 않을 지 노심초사하는 것은 적지않은 사람들의 공통된 우려일 것 같다.
당장 위기에 처한 월드컴이 엔론처럼 파산이라도 한다면 그것도 작지 않은 문제다. 현재 전세계 100개국 이상에서 수천개의 기업이 월드컴을 통해 인터넷에 접속하고 있다. 따라서 월드컴이 큰 일을 당한다면 인터넷 불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일시적으로라도 그렇게 되면 세계 경제에 상상하기 어려운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이번 스캔들이 기업 전체에 대한 도덕성과 신뢰성을 실추시켰다는 점이다. 미국은 이번 사태 이후로 1000개의 기업이 이미 발표한 실적을 다시 고쳐나가야 할 것이라고 외신은 전한다. 또 유럽이나 아시아의 일부 기업도 회계부정에 휘말리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어느 기업이 ‘백로’라 한들 한번이라도 의심하지 않을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대다수의 백로 기업은 땅을 칠 노릇이다.
사상 최대 규모인 월드컴 스캔들은 이루 열거조차 할 수 없는 많은 점에서 전세계의 선량한 기업과 국민들에게 비탄과 분노, 그리고 우려를 안겨주고 있다. 미국 정부가 그것에 대한 책임을 월드컴에 묻고 재발 방지책을 세우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만 더욱 시급한 것은 월드컴 사태가 가져올지도 모를 ‘후폭풍’에 철저히 대비하는 것이다. 그러한 일에는 우리 나라도 결코 예외일 수 없다는 인식을 가지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박재성 국제부장 js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