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6세대 액정표시장치(LCD) 기판 규격으로 1500×1800㎜ 이상을 검토 중이라고 밝힘에 따라 최대 라이벌인 LG필립스LCD의 대응이 주목된다.
삼성과 LG는 세계 TFT LCD 시장에서 1, 2위를 다투는 거대기업으로 그동안 기술 개발, 설비투자 등 여러 면에서 불꽃 튀는 경쟁을 벌여왔다. 따라서 삼성의 이번 차세대 기판 규격 제안은 LG를 크게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LG는 일단 6세대 규격에 대해 아직 확정된 바 없으며 다양한 규격을 놓고 검토 중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그러나 차세대 기판 규격에 따라 주력 생산모델의 종류와 생산능력이 달라지는 업종 특성상 LG가 ‘히든 카드’를 불쑥 제시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전자업계의 오랜 라이벌인 삼성과 LG는 각각 그룹 차원에서 LCD를 ‘포스트 반도체’의 주력 아이템으로 육성하고 있다. 따라서 매출이나 시장점유율·생산능력·기술력 등에 못지않게 기판 규격이 갖는 상징성은 매우 크다.
그동안 유리 기판 규격을 둘러싸고 양측은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 그 때문인지 1세대에서 5세대 라인까지 한번도 규격 통일을 이루지 못한 채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반복해왔다. 양측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지만 책임 소재를 따지기에는 양측의 입장이 너무 첨예하게 맞서 있다.
규격 경쟁은 산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규격을 잘못 채택했다가는 도태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성격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 과거 VCR 경쟁에서 마쓰시타가 어려움을 겪은 것은 규격 표준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엄청난 투자비와 달리 라이프 사이클이 짧은 LCD시장에서 규격은 기업의 경쟁력과 무관하지 않다.
경쟁은 산업의 동력이다. 경쟁이 없는 산업은 장밋빛 향기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경쟁은 지극히 바람직한 현상이다. 인텔과 AMD가 마이크로 프로세서 시장에서 30여년의 시장을 지배해오고 있는 것도 경쟁이란 당근과 채찍질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외산 비율을 크게 낮춘 디스크리트 시장도 KEC와 광전가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경쟁을 벌이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 시장은 외국 기업에 고스란히 넘어갔을 것이다.
지금은 이 선에 머물고 있지만 PCB 분야의 대덕전자와 코리아써키트, 콘텐서 분야의 삼영전자와 삼성콘덴서(삼화전기), 커넥터 분야의 우영과 한국단자공업, 종합부품 분야의 삼성전기와 LG이노텍(LG전자부품) 등은 대표적인 경쟁기업이다.
이들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PCB와 콘텐서·커넥터·부품 등을 국산화하고 일류화하는 데 기여했다. 경쟁이란 묘약이 해당 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자극제로 작용한 것이다.
작금의 부품산업은 위기를 맞고 있다. 수출시장에서의 비중은 그런 대로 높지만 일부 품목에 쏠려 있는 실정이다. 수출시장에서 잘나가는 품목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 때문인지 출혈경쟁과 과당경쟁이란 좋지 않은 소식을 접하기도 한다.
규칙에서 벗어난 경쟁은 이미 경쟁이 아니라 싸움일 뿐이다. 경쟁은 당당해야 하며 비굴해서도 안된다. 경쟁은 자극제이며 독특한 색깔의 승부여야 한다.
한국의 LCD산업은 세계 선봉에 서 있다. 이미 브라운관(CRT)시장을 평정했으며 평판디스플레이(FPD)의 리더인 TFT LCD시장은 일본과 대만을 누르고 1위에 올랐다. ‘포스트 반도체’시대를 주도할 새로운 국가 기간산업으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지면 수출 100억달러를 넘는 것도 시간 문제다.
LG와 삼성의 1등 경쟁은 한국 LCD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기폭제로 작용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양측의 경쟁은 산업발전적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다.
모처럼 달아오른 경쟁을 집착이나 지나친 승부욕으로 그르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과욕과 집착은 경쟁이 아니라 도박일 뿐이라는 사실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양측의 선의의 경쟁이 침체돼 있는 부품산업에 동력으로 작용했으면 한다.
<모인 산업기술부장 inm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