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 IT환경을 전망해달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기술변화가 워낙 심해 10년은 커녕 5년 앞조차 내다볼 수 없다”는 빌 게이츠의 대답은 대표적인 우문현답으로 통한다.
윈도95 발표 당시 빌 게이츠는 불과 몇개월 앞의 IT환경조차 내다보지 못해 혼줄이 난 적이 있다. 인터넷(TCP/IP)의 존재를 얕잡아 봤던 그는 윈도를 지원하는 통신망으로 당시 대세였던 공중망(X.25)을 선택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불과 4개월 만에 X.25기반의 마이크로소프트네트워크(MSN)를 포기하고 인터넷으로 선회해야 하는 곤혹을 치른다. 대가의 역사적(?) 오판은 빌 게이츠뿐만이 아니다.
60년대 집채 만한 IBM 메인프레임을 캐비닛 크기로 줄이는데 성공한 천재 엔지니어 켄 올슨은 “컴퓨터는 더 이상 작아질 수도 없으로 그럴 필요도 없다”고 단언했다. 많은 이들이 수백만 달러의 IBM 대신 올슨의 12만 달러짜리 미니컴퓨터 ‘PDP’를 택했고 그가 세운 디지털(DEC)사는 순식간에 연매출 67억 달러의 거대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탁상용컴퓨터(PC)가 등장하면서 회사는 휘청거렸고 급기야 올슨은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쫒겨나게 된다.
IBM의 중시조 격인 토머스 왓슨의 예측은 한 술 더 뜬다. 그는 54년 제1세대 컴퓨터의 명품 ‘704’를 발표하면서 “이런 컴퓨터는 세계에 5대만 있어도 된다”고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5년도 못돼 성능이 월등하게 뛰어난 제2세 컴퓨터가 등장했고 보급대수도 1000여대를 육박한다.
갖은 예측들은 지금도 쏟아지고 있지만 맞아 들어간 것은 별로 없는 듯하다. 예를 들어 하늘을 찌를 것 같았던 닷컴 붐은 겨우 3년을 버티는데 그쳤고, 인터넷에 밀려 인쇄매체가 고사하리라는 예측은 2년도 못돼 허구로 드러났다. 디지털 컨버전스(Digital Convergence)에 대한 장밋빛 전망도 그렇다. 현재의 기술추세라면 누가 보더라도 통신기기, 가전기기, 정보기기가 하나로 융합되는 컨버전스 현상은 조만간 도래하게 돼 있다.
하지만 최근의 한 유력 보고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런 경향은 오히려 여러 가지 인식의 차이로 되려 또 다른 다양성과 편협성을 야기시키는 디버전스(divergence) 현상을 초래할 것이라며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기술적으로는 완전한 융합제품이 가능하다 해도 인프라, 콘텐츠, 서비스, 요소기술 등의 불균형이 상존할 수밖에 없고 이렇게 되면 오히려 새로운 개별 특화기기의 등장을 촉발시킴으로써 시장 경쟁에서 융합제품의 열세가 불가피해진다는 것이다. 소비자들 역시 ‘더 좋은’ 기기가 나올 때까지 구매를 늦추려 할 터다.
세계 경제를 좌우했던 미국의 IT경기가 언제쯤 회복될 거라는 식의 예측도 마찬가지다. 논리적으로 보더라도, 다른 수단이나 요인에 의해 경기회복기가 도래할지는 몰라도 이미 경험한 바 있는 IT기반의 신경제나 닷컴붐과 같은 것은 결코 재현되지 않게끔 돼 있다. 앞으로 산업에서 IT의 비중은 지금보다 훨씬 늘어나겠지만, 그것은 마치 우리가 살기 위해 먹는 밥의 역할처럼 당연한 일이어서 경기의 종속변수는 될지언정 독립변수는 될 수 없다는 이치에서다.
토머스 왓슨 이후 IT의 미래에 대한 예측들이 줄곧 빗나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현대 과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IT의 미래는 지금까지 항상 기회와 위기라는 양면성을 갖고 발전해 왔다. 낙관을 근거로 하는 기회는 대개 초기에 대두되고 직관적인 감을 수반하는 위기는 그 기술이 막 보급될 즈음에 느껴진다. 이런 차이는 비전과 현실의 차이이기도 하다. 예측이 빗나가곤 하는 것은 현실에 기반하지 못한 비전이 당대를 현혹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서현진 E비즈니스부장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