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실버들을 위한 IT세상

 걸리버 여행기를 보면 죽음을 선망하며 사는 라그나그국이 나온다. 이 나라 주민들은 모두 고령자들로 소외와 고독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산다. 치매가 만연하고 아집과 완고함으로 갈등이 고조된다. 노인들의 아픔을 잘 드러낸 글이다.

 유엔은 지난 99년을 노인의 해로 정했고, 전 인류의 동참을 호소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도 10월 2일을 노인의 날로 선포했다. 유엔은 전체 인구의 7% 이상이 65세 이상일 때 고령화 사회로 규정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이미 2000년에 전체 인구의 7% 이상이 65세 이상인 ‘고령화 사회’로 진입했다.

 그러나 고령인구인 실버세대를 위한 관심과 정책은 적은 편이다. 선진국에서는 실버계층에 독립적인 일상생활권을 줄 수 있는 복지·의료·공학이 연계된 첨단기술이 있고, ‘장수공학’이란 학문도 있다.

 세계 최고의 장수국가인 일본에서는 고령층을 겨냥한 ‘실버 IT비즈니스’가 성황을 이루고 있다. 게임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나무코는 치매환자를 위한 게임기를 개발했는데 이 게임기는 게임을 즐기면서 신체기능 재활을 도모할 수 있도록 했다. 자동차 업체들은 고령자가 큰 부담없이 운전할 수 있는 신형 차량을 앞다퉈 개발했다. NTT도코모의 ‘라쿠라쿠폰’은 대형 액정화면에 글자가 크게 표시되게 만들어 실버세대가 불편없이 사용하도록 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 이동통신 시장에도 실버 마케팅 바람이 불고 있다. 이번 추석에는 불필요한 기능을 없애고 가격을 낮춘 실버폰이 불티나게 팔렸으며, 기본료가 싸고 통화료 할인혜택이 있는 실버 요금제 가입자가 늘고 있다. 정부가 소홀한 ‘노인 정보화’를 위해 55세 이상의 정보 소외계층을 위한 인터넷 무료교육 운동인 실버넷 운동본부도 있다. 지역별로 실버 인터넷 정보검색대회도 심심찮게 열린다.

 실버세대를 위한 ‘IT비즈니스’는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발상의 전환을 하면 틈새 시장이 많을 것이다. 미아방지를 위한 GIS장착 휴대폰과 시계를 장거리 출타시 길을 잊어버리는 노인들을 위한 상품으로 개발할 수도 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홈쇼핑과 원격의료시스템을 활성화했고 센서기술, 언어합성기술, 로봇기술 등으로 실버세대를 위한 복지사회의 구현은 훨씬 용이해졌다. 이제 고령자들은 기초적인 인터넷 활용만으로 사회와 유대의 끈을 붙잡아 소외감을 극복할 수 있고, 정보와 지식의 습득도 용이해졌으며, 실버전용 사이트를 이용할 수도 있다.

 복지정보사회에서는 무엇보다 노령인력의 활용을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단순한 DB구축 요원으로 실버세대를 활용하고 전화번호 안내서비스 분야에서도 고령자들을 활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고령자들은 육체적 힘이 빠지고 둔해지는 반면 경험에서 얻은 실제적 사고·전문기술·축적된 지식의 활용·지혜 등은 유지되거나 오히려 향상되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평생 현역으로 남기를 원하고 당당하고 활기찬 노년을 보내고 싶어한다.

 누구나 늙는다. 늙기도 서럽거늘 정보사회에서 노인들을 소외시키기까지 해서야 되겠는가. 그동안 우리가 돌보지 않은 점점 다수가 되는 실버세대를 위한 IT정책과 비즈니스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우리 정보통신기술은 실버세대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이용돼야 한다. 정부와 관련 단체의 ‘실버 IT플랜’이 만들어져 그들이 IT세상에서 건강하게 삶을 향유하길 바란다.

<고은미 IT리서치부장 emk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