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킬러들의 잔치

 세계 IT산업의 불황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IT산업의 침체는 이제 IT산업만의 문제가 아닌 전세계 경제의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상황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특히 IT산업의 근간이 되는 소프트웨어업계는 하루 하루를 넘기기가 어려울 정도로 판매 부진에 몸살을 앓고 있다.

 소프트웨어산업의 장기적인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킬러 애플리케이션, 이른바 ‘킬러앱’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킬러앱은 출시와 동시에 경쟁상품을 몰아내고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는 제품을 뜻한다. 월드와이드웹(WWW)이나 워드프로세싱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최근에는 불황을 타개하고 새로운 시장이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제품으로 변용돼 흔히 사용된다.

 눈을 바깥으로 돌리면 킬러앱의 성공사례를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전세계적인 불황의 터널 속에서도 자신들만의 영역을 고집해가며 더많은 수익을 창출하는 소프트웨어기업이 적지 않다. 실례로 최근 전세계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다국적 IT기업들의 콘퍼런스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 이 같은 행사는 수요를 창출하겠다는 마케팅 차원의 일환으로 진행되지만 최근의 행사에서는 불황기에도 불구하고 우리 기업만큼은 이만큼 잘나가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속셈을 쉽게 엿볼 수 있다. 따라서 행사 주최도 과거에는 의례 IBM이나 HP·MS 등 공룡기업이었지만 최근에는 i2테크놀러지·네트워크어플라이언스·브로케이드·NCR테라데이타 등 특정분야 전문업체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비록 규모는 크지 않지만 킬러앱으로 특정분야에서 세계 넘버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빈사상태에 있는 우리나라 소프트웨어산업의 활로도 공룡기업이 손쉽게 손을 대지 못할 정도로 전문화되거나 시장규모는 작지만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갈 수 있는 다양한 킬러앱에서 찾아야 한다.

 MS의 운용체계에서 구동되는 응용프로그램을 리눅스에서도 구현할 수 있도록 한다거나 어도비의 그래픽 소프트웨어나 동영상 편집프로그램 중 일반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구현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 저가에 공급하는 것 등은 이런 노력의 일부로 해석할 수 있다. 또 음성인식업계가 최근 개발에 앞다퉈 나서고 있는 자동교환시스템(VAD)·오토PC용 프로그램 등도 좋은 킬러앱이 될 수 있다.

 한컴이 아래아한글에 새로 탑재하려는 표계산 소프트웨어(스프레드시트)인 ‘넥셀’도 킬러앱의 대표적인 사례다. 한컴은 넥셀을 통해 사무용 소프트웨어시장에서 MS 오피스의 아성을 허물어뜨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사실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다국적기업들의 소프트웨어는 기능은 우수하지만 일반인이 손쉽게 구입해 사용하기에는 가격이 부담스럽다. 또 이들 제품은 가격이나 명성에 걸맞게 다양한 기능을 갖추고 있지만 실제 일반인이 사용하는 기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비록 복잡하고 다양한 기능은 없지만 꼭 필요한 기능을 우리의 문화에 맞도록 사용하기 간편하게 개발해 값싸게 제공한다면 국산제품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IT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우리 국민이 브랜드에 얽매여 비싼 대가를 치르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소프트웨어업계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현재의 암울한 상황에 절망하기보다 각 기업마다 킬러앱을 개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거나 틈새시장을 석권할 수 있다면 소프트웨어산업의 르네상스는 결코 이뤄질 수 없는 꿈이 아니다. 전세계 기자들을 대상으로 우리 기술로 개발된 킬러앱들을 한데 모아 선보일 수 있는 잔치를 벌이는 날, 우리의 소프트웨어산업은 부활의 나래를 활짝 펼 것이라고 자신해본다.

 <양승욱 엔터프라이즈부장 swy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