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가 제조업의 세기라면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다. 창의력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문화산업이 주요 전략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도 문화산업을 21세기의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하지만 고부가가치산업인 영상문화의 근간이 되고 있는 방송산업이 디지털기술로 급진전되면서 혼돈 양상을 보이고 있어 몹시 걱정스럽다. 빠른 시일내에 이러한 혼돈양상을 정리하지 못하면 미국·일본 등에 우리시장을 송두리째 내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 방송산업은 지상파 방송중심으로 해왔다. 하지만 케이블채널과 위성방송의 등장으로 다매체·다채널시대로 접어든 데다 방송과 통신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새로운 서비스들이 속속 생겨 더이상 기존의 논리가 먹혀들지 않게 됐다.
디지털방송의 전송방식만 해도 그렇다. 방송양식에 따라 전송방식도 여러가지다. 스카이라이프에서 시작한 위성방송의 전송방식은 유럽식, 지상파TV의 전송방식은 미국식, 그리고 내년부터 시작될 지상파DAB방식은 유럽 표준인 유레카-147방식으로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지상파TV 전송방식은 오래전에 이미 미국식으로 정해져 있지만 여전히 다른 한쪽에선 유럽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전송방식만 그런 게 아니다. 4차 유선방송사업자(SO)전환을 앞둔 시점에 SO와 지역중계방송사업자(RO)간의 분쟁도 여전하다.
방송위가 RO를 SO로 전환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과정에서 협업관계를 잘 유지해 오던 RO와 SO간 분쟁이 벌어지고 있다. 방송위는 업체간 문제여서 직접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라지만 이렇게까지 간 데는 방송위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게 중론이다. 심사기준에 협업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RO에 대해선 SO로의 전환에서 제외한다는 한구절만 넣어도 이런 문제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다.
디지털기술과 사회·경제환경의 변화로 방송산업에 대한 정책을 놓고 방송위와 여러부처의 마찰이 일어나고 있다. 케이블업체간 기업결합을 놓고 공정위와, 새로운 방송서비스를 놓고 정보통신부와도 갈등을 빚고 있다.
이러한 영역다툼은 업체발전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업체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부처간의 영역다툼은 늘었으면 늘었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란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뿐만 아니다. 위성방송의 지상파 재송신 문제, 서비스 개방 문제 등 산적한 문제는 하나둘이 아니다. 이를 해결해야 할 임무가 방송위의 손에 달려 있다.
한 나라의 방송산업은 그 나라의 대중문화를 좌우하고 있다. 더구나 우리는 방송서비스의 개방 문제라는 중차한 문제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하루빨리 선진국과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방송산업의 미래를 결정짓는 방송위의 역할이 재정립돼야 한다.
우선 방송위가 정책을 결정할 때 타부처와의 협의는 물론 업체간 이해를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또 하나는 방송과 통신의 융합에 따른 적절한 정책을 행사할 수 있는 역할을 맡겨야 한다. 방송위의 위상이 흔들리고서는 우리 방송산업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하루빨리 방송위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원철린 문화산업부장 crwon@et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