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당인 미국 공화당과 한국의 민주당은 정책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작은 정부’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공화당의 작은 정부는 시장의 자율 기능을 존중하는 데 바탕을 두고 있다. 미국 재계나 산업계도 “정부가 산업계를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공공연하게 펴지 않는다. 기업가나 개인의 창의력과 자립을 덕목으로 여기는 까닭이다. 정부의 지원은 곧 국민 세금이 소요되는 것을 말하는데 국민은 세금이 그런 곳에 쓰이는 데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민주당도 자유시장 원리에 충실한 작은 정부를 원칙적으로 표방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 산업계는 기업이 어려우면 정부가 나서 지원해야 한다고 쉽게 말한다. 심지어 학계나 연구계, 언론조차 ‘정부의 지원’을 주장한다. 사실 우리 산업이 비교적 짧은 기간에 미국이나 일본 같은 선진국을 거의 따라잡은 것도 정부의 지원책에 힘입은 바 크다. 그래서 정부가 산업을 지원하는 것은 한국의 추세며 풍토가 돼 버렸다. 미국 사람들이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미국 의회 의원들도 경기부양에만큼은 목소리를 높인다. 얼마 전 미국 민주당 하원의 리처드 게파트 의원이 조지 부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부시 대통령은 경기가 침체되고 있는데도 그것을 못본 체하고 있다”며 “29년 대공황이 시작될 때 대통령이던 허버트 후버 이후 최악의 경제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톰 대슬 민주당 상원의원도 “부시 대통령은 공화당원들의 자리 마련보다 보통 사람들의 일자리 창출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침체된 미국 경제가 적도의 무풍지대(doldrums)에 갖힌 범선처럼 꼼짝하지 못하고 있는 데도 부시 대통령이 경기부양보다 이라크 침공에 골몰하고 있는 점을 마뜩찮아 하고 있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 정부도 산업체에 대한 정책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반도체만 해도 그렇고 전자·정보산업에 대해서도 알게 모르게 도와줬다. 이제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갖고 있으니 그 같은 주장을 할 필요가 없어진 것뿐이다. 유럽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국민총생산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주력산업인 정보기술(IT)산업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기는커녕 최근 빈사상태에 이르고 있는데도 정부는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형상이다. 대선 준비와 북한 핵문제 등과 겹쳐 다른 데 신경쓸 겨를이 없기는 할 것이다. 또 시중에 많이 풀린 돈과 내수경기 호전, 그리고 삼성전자를 비롯한 SK텔레콤 등 일부 초우량 전자업체의 막대한 규모의 흑자에 가려져 많은 기업체가 처한 고단함이 잘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 IT업계가 처한 어려움은 비단 벤처기업에 국한되는 문제만은 아니다. 대부분의 IT기업이 버티기도 어려운 상태로 그것은 총체적 위기상황에 가깝다. 세계경기가 당분간 회복될 가능성이 희박한 상태에서 그들을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정말 소문대로 조만간 ‘IT산업 대란’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민의를 대변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적어도 ‘표 관리’를 위해서라도 한 마디쯤 할 것도 같은데 그것도 못하고 있다. 학계나 연구계도 입을 다물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아무리 정권 말기라고 해도 너무 심하다. 내년 초면 새로운 정권이 출범하는 시기라서 정신이 없을 것이다. 정부가 IT산업 회생을 정책의 최우선과제로 삼고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도 될까 말까 한 시기다. 모두가 팔짱만 끼고 보고 있는 새 세월은 위기를 향해 달려가고만 있다.
<박재성 국제부장 js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