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약속어음의 현금화

◆박재성 국제부장 jspark@etnews.co.kr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81년 취임연설에서 “정부는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 정부 자체가 문제다”고 웅변했다.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들은 자유시장을 옹호하고 인권을 보호하는 작은 정부를 원했다. 레이건은 그것을 알았고 그렇게 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세월은 흘렀다. 93년 대통령에 취임한 빌 클린턴 역시 취임연설에서 “정부는 문제가 아니며 해결책도 아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해결책이다”고 말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클린턴은 덧붙였다. 우리 시대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대한 위대한 논쟁은 마무리됐다고.

 정부의 역할에 대한 논쟁이 얼마나 치열했으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힐 정도였을까. 대통령이 그것을 취임 일성으로 밝히든 그렇지 않든 변함없는 사실이 있다. 소위 작은 정부든 아니든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함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대통령제를 택하는 미국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의 권한이 미국보다 훨씬 강하다. 군주제와 대통령제는 얼음과 숯불과도 같다. 그런데도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게 우리 사정이다. 그렇게 영향력이 막강한 대통령을 마침내 우리는 뽑았다. 역경을 딛고, 새로운 세기 우리를 화합과 번영의 영광된 길로 이끌 지도자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미국의 인종간 분열이 미국에 내린 저주인 것처럼 우리의 지역감정은 천형과 같은 비극이다. 질시와 반목의 뿌리는 깊었고 편견과 경멸은 정치적 신념의 허울을 쓰고 난무했다.

 이제 버나딘 추기경이 생을 마감하면서 밝힌 “시간이라는 귀중한 선물을 비난과 분열에 낭비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클린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말한 의미를 되새겨야 할 때다.

 우리는 대통령 당선자가 후보로서 밝힌 공약들을 잘 기억하고 있다. 모든 공약은 약속어음과 같다. 그것을 우리는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우리는 그것이 잔고 부족이라는 도장이 찍힌 채 부도수표로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현금화함으로써 풍요의 궁전으로 갈 수 있는 여비가 될 것으로 믿고 있다.

 대통령 당선자가 우리가 원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고 바라지 않는 것을 강제하지 않을 것으로 우리는 믿고 있다. 새롭게 재편되는 동북아시장 질서에서 우리나라가 우뚝 솟는 것은 물론 세계 경제의 주역이 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남북 문제도 평화롭게 해결되기를 원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훌륭한 정치·경제시스템이 필요하다. 정치 논리에 의해 시장경제가 희생되는 일을 더이상 바라지 않는다. 보복이니 청산이니 하는 과거 지향보다 희망찬 미래에 눈의 초점을 맞추고 싶은 사람이 많다.

 산업계의 최고경영자(CEO)들은 대체로 새로운 대통령 당선자에게 이렇게 기대하고 있다. 길은 멀고 험하지만 우리는 정보대국으로 가야 한다. 정보화를 가로막는 법과 제도를 바꾸고 정보화로 생기는 피해와 불이익을 감수하려는 이용자 개개인의 의식도 변해야 한다. 정부의 정보화 투자 확대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정보대국이 되느냐 되지 못하느냐는 대통령이 정보화 정책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