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송구영신(送舊迎新)

◆고은미 IT리서치부장 emko@etnews.co.kr 

 또 한 해가 저문다. 세월은 무심하게도 한 해의 언덕을 지난다. 세월의 마디가 우리 인간에게 주는 것은 무엇일까.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제야(除夜)에는 항상 아쉬움과 희망이 교차한다. 김영랑 시인은 ‘제야’에서 ‘한해라 기리운 정을 묻고 쌓아 흰 그릇에/ 그대는 이 밤이라 맑으라 비사이다’라고 노래했다. 소망을 비는 우리네 모습이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빼놓을 수 없는 제야 행사는 보신각 타종이다. 서른세번 울리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소리다. 종소리가 울릴 때다 회한이 지나가고 소망을 담는다. 한해를 마감하는 종소리에 소망을 담는 것은 서양도 마찬가지다. 영국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은 ‘저 하늘까지 종소리 크게 울려라/ 낡은 것을 울려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으라/ 진실과 정의의 사랑을 맞으라’고 노래했다.

그러나 낡았다는 것이 비단 흘러간 세월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난 세월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흔적들, 상처와 고통, 용서받고 싶은 실수들은 훌훌 털어 버리고 소중한 것은 간직하고 싶으리라. 또한 새로움이란 참회와 반성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며 그것이 앞날을 밝혀주는 희망과 창조의 힘이 될 것이다.

 올 한해 IT산업도 예외없이 어느해보다 다사다난했다. 개막식 자체가 IT축제였던 월드컵과 붉은 악마의 함성은 IT코리아의 위상을 세상에 알린 기분좋은 기억이다. 인터넷의 위력을 보여준 대통령 선거와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여학생들의 추모행사도 있었다. 세계적으로 우수한 전자정부를 완성했고 이동전화 가입자 3000만명, 초고속인터넷 이용자 수 1000만명 시대도 올해 시작됐다. 휴대폰이 수출 1위 품목으로 등극한 것도 올해의 뉴스였다. KT·파워콤이 민영기업으로 새출발해 통신업계에 이정표를 제시했다. 인터넷 유료화가 네티즌들에게 받아들여졌고 리딩그룹을 중심으로 인터넷 업체들이 이익을 냈으며 무선인터넷의 활황으로 무선콘텐츠업체들의 약진도 돋보였다.

 그러나 좋은 뉴스들과 함께 기억하기 싫은 나쁜 소식들도 많았다. 벤처비리로 촉망받던 1세대 CEO들이 구속된 아픔도 있었다. 매출 확대를 위해 비정상적인 영업을 해온 SW유통업체들의 사기로 빚어진 부도는 피해규모가 1000억원대에 이르러 침체된 IT경기를 더 깊숙한 수렁으로 빠트렸다. 전 세계적으로 분식결산이라는 회계 부정 사건으로 IT경영자들이 도덕성에 상처를 입었다.

 올 한해 촉망받으며 부상한 인물들과 어쩔 수 없는 격량 속에서 지는 별들이 있었다. 그러나 새해가 되면 희망을 안고 모두 새로 시작할 수 있다. 고통도 실패도 극복하면 자산이 되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세월은 변함없이 흐르지만 새해 각오는 매번 같을 수 없다. 새해에는 새로운 IT정책이 새 정부에서 만들어질 것이다. 업계에도 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콘텐츠 시대 만개, 통신서비스 3강 구도 재편, 포스트PC시장 성장, 중국 가전제품 위협 본격화, 케이블방송의 디지털 전환 등 내년도 IT산업은 이슈가 많다.

 이 밤이 지나면 계미년 새해가 시작된다. 새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며 한해를 설계하고 소망을 빌자. 머뭇거리거나 두려워하지 말자.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