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유비쿼터스 한·일 전쟁

 ◆서현진 E비즈니스부장 jsuh@etnews.co.kr

 세계 산업발전의 궤적은 혁신(innovation)의 역사다. 제품 개발이 중심이 된 프로덕트(product) 혁신과 생산기술이 중심이 된 프로세스(process) 혁신의 선순환에 의해 이루어져온 것이다. 70년대까지는 미국의 대량생산체제에 의한 프로세스 혁신, 80년대를 전후해서는 일본의 품질개선에 의한 프로덕트 혁신 그리고 90년대에는 다시 미국의 IT에 의한 경영 프로세스 혁신이 있었다. 그렇다면 ‘IT버블’이 붕괴되고 있는 지금, 그 다음 순서는 무엇일까.

 일본인들은 그 답이 유비쿼터스(ubiquitous)에 의한 프로덕트 혁신이며, 그 주역도 자신들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싱크탱크라 할 수 있는 노무라총합연구소의 분석은 눈여겨 볼 만하다. 세계 산업을 지배해온 일본이 90년대 들어 미국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은 제조업의 품질개선에 집착한 나머지 PC와 인터넷 등 IT인프라를 도외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노무라는 이 기간에 대해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또는 ‘미국의 완전한 승리’라며 일본의 패배를 깨끗이 자인하고 했다. 바로 이때 일본이 정부차원의 유비쿼터스재팬(u재팬)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일본은 현란했던 인터넷(닷컴) 열기가 미국과 한국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을 때도 고집스럽게 제조업을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유비쿼터스 선언은 일본의 뒤늦은 후회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세계의 IT패러다임은 PC와 인터넷 중심에서 유비쿼터스로 이동하고 있다. 유비쿼터스는 한마디로 기존의 PC와 휴대폰·PDA·게임기·정보가전·센서·기계·자동차 등 이른바 비(non)PC 계열 정보기기와의 네트워킹 현상이다. 2001년을 기준으로 하면 PC는 세계적으로 2억대 내외, 비PC계열 정보기기는 100억대나 된다. 이렇게 되면 네트워크 수단인 인터넷의 주소체계도 자원이 한정된 IPv4에서 무한정한 IPv6로 이동해 비PC단말기의 고밀도화를 지원하게 된다. 이를 전제로 일본은 90년대 중반이후 유비쿼터스를 착실히 준비해왔다. 가령 IPv6부문에 대한 연구와 투자가 세계에서 가장 앞서고 있는 것은 그 대표적 예다.

 산업발전 차원에서 일본의 유비쿼터스 혁신에 대한 구상은 IT기반의 효율화 차원을 넘어 새로운 시장창조를 의미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단말기와 같은 다품종 소량 제품에 강한 전통적인 일본의 제조업이 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을 그냥 보낸 게 아닌 것이다.

 문제는 IT분야에서 장기침체 기미가 보이는 한국이다. IT강국이니, 일본을 능가했느니 했지만 지금은 별다른 해법없이 미국의 경기침체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현실이다. 게다가 3000만 이동전화 가입자 또는 2500만 인터넷 이용자에 대한 잠재적 국가경쟁력을 벤처기업의 아이디어나 게임과 같은 영상 콘텐츠로만 수렴하려는 산업적 편협성이 정부정책을 관통하고 있다. IT인프라의 확대가 전자상거래(eCommerce)의 활성화에 직결된다는 식의 단순한 인식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흐름은 미국이 지향해온 소프트한 IT환경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려는 데서 나타난 왜곡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의 기대처럼 유비쿼터스 산업분야는 진화된 IT를 활용해 디지털컨버전스와 같은 신규시장을 창조해낼 것이 확실해지고 있다. 제조업이 살아있는 일본은 시장적 토대가 굳건하고, 어쨌거나 초고속망이 발전한 한국은 IT인프라가 강하다. 이제 막 태동이 된 유비쿼터스 환경을 누가 먼저 선점할 수 있을까. 한일간 진정한 유비쿼터스 경쟁은 바로 지금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