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 정보가전부장 etyt@etnews.co.kr
얼마 전 평소 알고 지내던 몇 사람과 저녁식사를 같이 했다. 모인 사람들의 직업이 공교롭게도 기업인·언론인·공무원·교수 등 소위 IT업계의 ‘먹물’들이어서인지 다소 무거운 주제의 이야기가 오갔다. 반주까지 곁들인 탓인지 서로의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직접 화법으로 몇 장면을 옮겨본다.
기업인1:이번 대선은 세대간 격돌이었어. 나도 40대에 사장이 돼 지금 50을 넘겼지만 앞으로는 은퇴 시기를 걱정해야 할 처지인 것 같아. 젊은이들의 열망과 힘으로 대통령 당선자가 나왔으니 앞으로 우리 사회 전반의 세대교체시기가 훨씬 앞당겨지겠지. 하지만 왠지 씁쓸해….
교수:세대갈등으로 몰고 가서는 위험해. 지역 분열도 심각한 데 이젠 세대까지 갈라지나. 이번 대선은 변화의 욕구 분출이야. 젊은이들의 역량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어. 그런데 나도 40대인데 사실은 후배들 눈치가 보여. 분위기가 이상하거든….
공무원:동감이야. 영파워가 우리 사회의 주류까지는 아닐지라도 동력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은 분명해. 그런 점에서 희망이 있지. 하지만 언론에서 자꾸 2030이니 5060이니 떠들어대니 우리같이 중간에 낀 40대들도 불안해 하는 거지.
기업인2:나도 386세대로서 우리 사회의 변혁을 이루는 중심축은 아직 40대라고 생각해. 그렇지만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아래에 치이고 위에 눌리는 어정쩡한 세대가 된 것 같아. 흔한 말로 개혁도 아니고 보수도 아닌 회색계층에 속한 느낌이야.
언론인:대선이 끝난 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그 얘기야. ‘기성세대’들은 기득권이 걸려서인지 모이면 대선이 화제지만 젊은 사람들은 자기 앞가림하기 바빠. 사회 발전의 큰 틀로 2030세대의 꿈과 희망을 포용해야 해. 그것이 역사발전의 법칙이거든. 이것저것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어. 이제부턴 2030에 붙든지, 5060에 편입되든지 속편하게 살자구.(여기서부터 폭탄주가 돌기 시작했다)
40대가 혼란스럽다. 기업은 물론 우리 사회의 모든 기성조직에서 어지간하면 중간 간부로 성장, 조직을 꾸려가는 핵심세력인 40대가 이번 대선 결과를 바라보는 심사가 복잡하다. 지금까지 사회변혁세력임을 자임해왔지만 적당히 현실과도 타협할줄 알던 ‘기성세대화’된 40대는 2030의 발랄함과 열정을 부러워하면서도 기존 질서의 순치에도 몸을 던져야 했다.
5060에 비해 컴맹은 아니지만 휴대폰과 PDA로 무장한 2030과는 개인 경쟁력에서 어깨를 견줄 수 없다. IMF의 직격탄에서 간신히 살아나 이제 막 안정적 자리를 잡았나 했는데 세상은 어느덧 ‘확’ 바뀌어 있었다. 직장에서도 2030에게는 ‘무능한 기성세대’로 비판받는 일이 낯설지 않고 5060에게는 아랫사람 제대로 장악 못한다고 핀잔받는 일이 다반사다. 쥐꼬리만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낀 세대’의 하소연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처지에 몰리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분명 40대는 우리 기업, 사회의 중추고 개혁의 희망을 놓지 않고 있는 세대다. 2030에, 5060에 치여도 구차하게 안주할 수는 없다. 낀 세대 40대의 이날 회식은 그래서 이런 구호 제창으로 끝났다.
“굳세어라, 40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