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제2기 방송위 출범

◆원철린 문화산업부장 crwon@etnews.co.kr

 

 흑과 백의 아날로그적인 사고에 젖어있던 우리 사회가 조금씩 바뀌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이런 변화의 기운은 인터넷으로 인해 촉발됐다. 인터넷은 보수의 두터운 벽을 허물어뜨리고 지난 16대 대통령선거때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승리하는 데 일조했다.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낼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보여준 인터넷은 여전히 미디어정책에서 소외된 채 제도권 밖에 머물러 있다. 또한 디지털기술의 빠른 발달로 인해 방송과 통신이 융합하면서 새로운 미디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지금, 이에 대한 정부의 정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이런 현실에서 방송정책을 총괄하는 방송위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방송위는 안팎의 공격으로 인해 곱사등에 처해 있다. 주파수배정 권한에다 막대한 자금력을 갖고 있는 정보통신부가 디지털방송 분야의 정책에서 방송위의 역할을 서서히 잠식하고 있다.

 또한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정위 본연의 역할을 내세워 방송시장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나섰다. 최근 공정위가 케이블TV최대사업장(PP)인 온미디어와 방송사업자(SO) 씨앤엠커뮤니케이션에 대해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계약조항을 수정하거나 삭제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린 것이다.

 물론 방송위에 대한 비판도 내부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과연 방송위가 방송전반에 대한 정책을 펼치면서 다양한 업계의 이해를 제대로 조율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방송위의 정책이 힘 있는 지상파 방송의 이해만을 대변하고 상대적으로 약자인 위성 채널이나 케이블 채널에 대한 정책적인 배려가 약할 뿐만 아니라 디지털시대에 걸맞은 방송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통합방송법으로 출범한 방송위도 이제 변해야 한다. 방송위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나름대로 많은 일들을 해왔으나 지금과 같은 자세로는 안팎의 공감을 폭넓게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터넷의 영향력을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느낀 노무현 정부는 방송위에 대한 접근을 이전의 정부와는 분명히 달리해야 한다. 새정부는 방송위가 명실상부하게 디지털시대에 적합한 미디어 정책을 펼 수 있도록 방송과 통신에 대한 전면적인 권한을 갖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

 다행하게도 제1기 방송위의 위원임기가 새정부가 출범하는 시점과 비슷하게 다음달이면 만료된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방송위 위원들의 선임 때부터 디지털시대의 매체융합에 대비한다는 확고한 원칙을 갖고 임해야 한다.

 위원 선임은 법적으로 정해져 있어 대통령이 결정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크지 않을 수 있다. 9명의 위원 중 교섭단체협의를 전제한 국회의장 추천 3명, 국회문광위 추천 3명 등 사실상 국회에서 6명을 선임토록 돼 있다. 따라서 정당간 협의과정이 순조롭게 이뤄져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예전과 같이 나눠먹기식 인선이거나 어느한쪽에 치우친 편향적인 인선이 이뤄져서는 안된다. 단순히 전문성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지상파 방송의 출신 인사들로 구성하거나 명망가 위주의 인선에 그쳐서는 방송위에 대한 새로운 역할을 기대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방송위가 한물간 인사들의 사랑방 구실을 하도록 해서는 안된다. 새술은 새부대에 담으라는 말이 있듯이 방송위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젊고 새로운 인사들로 채워야 한다.

 위원 선임시 지상파방송뿐만 아니라 케이블 채널과 위성 채널 등 새로운 매체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매체의 융합에 대비, 통신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을 갖춘 인사도 두루 선임해야 한다.

 다양한 이해를 조정할 수 있으면서 정책의 전문성을 견지할 수 있도록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민간 단체에서 활동한 중립적인 인사들을 고려해볼 만하다.

 방송위가 21세기 방송과 통신의 융합시대를 이끌어 갈 수 있는 명실상부한 정책기관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새롭게 재편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