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참여정부의 IT코드

◆서현진 E비즈니스부장 jsuh@etnews.co.kr

 80년대 이후 우리 정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매번 새로운 IT코드 발굴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5공화국 때는 행정·국방·금융·교육·공안 등 5대 분야를 엮는 국가기간전산망 구축 계획을 통해 정보산업의 태동을 알렸다. 그 추진 과정이 수시로 대통령에게 보고됐던 이 계획은 나중에 행정망용 PC 등의 수요를 급팽창시켜 IT업계가 오늘날과 같은 자생적 기반을 갖추는데 결정적 공헌을 했다.

 6공화국 때는 5공 때 밑그림이 그려졌던 전전자교환기(TDX)와 반도체 분야를 경제 성장의 견인차로 내세웠다. 문민정부 때는 갖은 비판을 감수하면서 코드분할다중접속시스템(CDMA)을 발굴해 오늘날 이동전화 인구 3000만 시대의 기초를 다졌다.

 국민의 정부는 외환위기 속에서 초고속망과 인터넷이라는 산업 동력을 이끌어 냈다. 역대 정부가 기울여왔던 여러 노력들을 이른바 전략적 IT기반으로 묶어내는 데도 성공했다. 이러한 집중력에 힘입어 IT는 국민의 정부 집권 5년 동안 총체적 국가시스템을 지탱하는 경제적·사회적 버팀목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노무현 대통령도 지난주 말에 있었던 장관, 수석비서관 등과 함께 벌인 참여정부 국정토론회에서 “IT가 과거 정부를 먹여 살린 핵심코드였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노 대통령의 IT에 대한 높은 인식 수준은 이미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충분하게 드러난 바 있다.

 바로 그런 점에서 IT분야가 참여 정부의 12대 국정과제에서 제외된 것은 크나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IT분야는 ‘과학기술중심사회구축’ ‘동북아경제중심국가건설’ ‘교육개혁과 지식문화강국 실현’ 등 12대 과제에서 세부과제로서만 지정돼 있을 뿐이다. 과거 정부의 핵심코드였던 IT산업이 새 정부에서는 더 큰 비중과 국가적 관심이 주어질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오히려 그 위치나 무게가 격하됐다고 본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참여정부의 이런 정책은 일단 최근의 IT흐름을 보다 적극적으로 감안한 전략적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가장 민감한 흐름 가운데 하나는 기술의 진보가 빨라지면서 정보화에 대한 개념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IT를 통해 정보나 사물을 통제하던 정보화 패러다임이 반대로 정보나 사물의 입장에서 IT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IT는 정보나 사물의 성격에 따라 분야별로 분산돼 수용되게 된다. 참여정부 역시 IT 분야를 그자체로서 전면에 등장시키지 않고 특성에 맞게 분야별로 세분화해 대과제 속에 분산시켜 육성하자는 새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예컨대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대과제 속에서 산·학·연·관이 유기적으로 연계된 지역혁신시스템을 구축하는 식이다. 이같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보편화시킨 IT전략이 최근에 강풍을 타고 있는 유비쿼터스 컴퓨팅이다. 컴퓨터 속에 사물의 정보를 입력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물 속에 컴퓨터를 삽입시킨다는 개념이다. 유비쿼터스 컴퓨팅이 활성화되면 IT기업 중심의 기존 IT산업은 그 좁은 틀이 해체되면서 보다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새 산업군의 탄생을 유도하게 될 것이다.

 어찌보면 새정부의 IT 정책은 12대 과제가 성공하면 부수적으로 IT분야도 성공한다는 소극적이고도 주변적인 발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처럼 여전히 IT를 전면에 내세워 하나의 산업 틀에 결박시킨다면 보다 큰 숲을 보지 못하는 편협성을 면치 못할 것이다. IT는 이제 각 분야 각 방면에 물처럼 바람처럼 스며들어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야 하는 낮설고 어려운 임무를 부여받았다. 새 정부의 IT코드는 나중에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든 일단 세계적인 IT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려는 의지임에 틀림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