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철린 문화산업부장 crwon@etnews.co.kr
지난 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당시 맺은 시청각 서비스분야의 양허표에 문제가 있음이 뒤늦게 드러났다. 협상 당시 우리 정부의 실수로 안해도 될 위성방송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분야를 개방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언론 보도에 대해 정부는 협상내용을 다시 검토, 대책을 마련하기보다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해명성 자료부터 배포하고 나섰다.
협정당시 실무부처였던 공보처를 흡수한 문화부는 영화 및 비디오 제작 배급서비스(UN CPC 96112·96113)의 내용 중 유선방송프로그램공급업 제외라는 단서 부분을 확대 해석한 것으로 위성방송PP개방 여부 논란은 의미없다는 해명성 자료를 냈다. 내부적으로 협정내용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파악했던 방송위원회도 언론보도로 인해 문제가 확대되자 2차례에 걸쳐 양허한 것이 아니라는 내용의 해명 자료를 배포했다. 문화부와 방송위의 입장대로라면 언론이 침소봉대해 호들갑을 떨었던 꼴이 됐다.
하지만 문화부와 방송위의 해명자료를 자세히 뜯어보면 문제가 없지 않다. 문화부는 UN CPC에 PP가 따로 분류돼 있고 양허한 UN CPC 96112와 96113은 해석상 PP가 아니라 다른 사업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통상전문가들의 의견은 문화부의 설명과 다르다. 94년 협정 당시에는 PP라는 개념이 별도로 분리돼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 산재했기 때문에 문화부 설명이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방송위의 해명자료는 더욱 가관이다. 위성방송업은 서비스협상분류기준에 해당한다 해놓고도 다음 항목에서 위성을 통한 방송 전송서비스가 분류기준인 W/120과 UN CPC에 명시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았다고 엇갈린 설명을 하고 있다.
문제는 문화부나 방송위의 이런 주장이 다음달부터 시작될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테이블에서 먹혀들지 의문시된다. 통상전문가들은 UN CPC 96112와 96113이 PP에 해당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면 대응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제 무역협상에서 우리의 해석은 중요한 것이 아니며 협상 상대국이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를 먼저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협상과 관련, 당시 우리 정부는 두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하나는 협상당시 우리식 사고대로 케이블산업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에 집착,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적인 흐름을 고려하지 않고 넣지 않아야 할 단서조항을 달았다는 점이다. 두번째는 UN과 WTO도 기술적인 변화를 수용, 여러 차례 분류표를 수정·보완하고 해당국의 의견을 듣는 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경우 아무런 의견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다만 앞으로 협상에서 이러한 실수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정부가 방송서비스 분야를 시장개방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을 정한 만큼 관련 부처 및 기관은 속히 의견을 통일하고 체계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방송은 다른 산업분야와 다르다. 방송이 갖는 사회 문화적인 영향력을 감안해야 한다. 따라서 서비스개방협상에서 정부가 늘 주장하는 대로 방송의 공익성을 생각해야 한다. 더구나 영상산업이 새로운 미래산업으로 떠오르면서 미국 등 선진국의 개방압력은 그 어느때보다 집요할 것으로 보인다.
안이하게 문구해석에 얽매여 문제가 없다는 식의 대응보다는 보다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따라서 유럽의 각 국가들과 캐나다·호주 등도 케이블TV 및 위성방송에 대해 현재 우리보다 더 엄격하게 외국인 소유규제를 시행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하며 이들과의 공조체제도 협상 전략의 하나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