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벤처, ‘해법’은 있다

◆서현진 디지털경제부장 jsuh@etnews.co.kr

 

 외환위기 시절, 벤처산업은 국가적으로 엄청난 고용창출효과와 함께 제2의 경제부흥에 대한 희망이었다. 내로라하는 대기업 출신들이 안정된 미래를 마다하고 벤처기업행을 택했던 것도 이런 배경에서였다. 당시 정부는 ‘10개 가운데 1개만 성공하면 된다’는 실리콘밸리식의 육성논리를 전면에 내걸어 벤처 붐을 주도했다. 정부로부터 이른바 ‘벤처인증’을 받은 기업도 1만여개나 배출됐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정부의 정책은 성공한 1개 기업보다는 평범한 10개 기업의 창업에 비중을 둔 셈이 되고 말았다. 실리콘밸리식 논리에 따르면 이 가운데 최소한 1000개의 기업은 성업중이어야 하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때 매월 60∼70건씩 쇄도하던 코스닥 기업등록 신청도 올들어서는 현재까지 넉달여 동안 고작 10건에도 못미칠 만큼 한산해져 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벤처 열기가 식었다는 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부가 공인했던 수많은 벤처기업들이 수익모델 부재와 경영난으로 아사직전에 몰리면서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벤처기업들이 관련된 부실금융과 고용 등의 문제는 벤처업계에 국한되지 않고 유관업계에까지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심각성을 더해준다. 실제로 투자손실 때문에 장부상의 가치와 실제 가치의 차이가 1000%에 이르는 벤처캐피털이나 창업투자사들이 속출하는 실정이다. 이런 여파는 궁극적으로 모든 기업들의 투자위축과 예비기업인들의 창업의지 저하로 나타나고 있다.

 곪은 상처는 하루빨리 도려내고 웃자란 꼬리는 밟히기 전에 잘라내야 하는 것이 이치다. 지금 벤처업계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궁지에 몰린 기업들에 어떤 형태로든 길을 터주는 일일 것이다. 여러 방안이 있겠지만 최상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은 기업간 인수합병(M&A)의 활성화를 유도하는 일이다. M&A를 통해 중복과 비효율성을 없애고 핵심역량을 결집시키도록 하자는 것이다. 물론 자진퇴출도 자유롭게 해줘야 할 것이다.

 가능성 있는 기업의 보호를 위한 옥석 가리기도 필요한 시점이다. 옥석 가리기는 투자자들의 안목을 넓혀주는 최고의 길라잡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더욱이 지금처럼 자율적 M&A나 자진퇴출이 차단된 상황에서는 더욱 절실한 대안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현실상황이다. M&A 활성화는 주식을 사고 팔 때의 과세조항에 발목이 잡혀 있다. 비과세여부에 대한 열쇠를 쥐고 있는 재경부나 금감원의 입장은 조세형평을 들어 기존 과세 입장을 쉽게 굽히려 들지 않고 있다. 옥석 가리기 역시 처음부터 객관적인 원칙 없이 지원금이나 인증같은 것을 남발했던 만큼 처리기준을 세우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다. 누가 옥석을 가리는 기준을 만들고 집행하느냐도 관건이 아닐 수 없다.

 산업육성 주무부처의 강력한 의지와 역할이 요구되는 것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다. 뾰족한 대안이 없어서, 또는 당국의 반대 때문이라는 식의 변명은 너무 안일하고 무책임하다. 장관이 나서서 재경부 등을 설득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제도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일이 아닌 만큼 설사 성사되더라도 단선적이고 일시적인 해결책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방안이 모색되고 있는데 실천방법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지금은 범정부 또는 민관합동의 실무기구가 구성돼 머리를 맞대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일처럼 보인다. 농협 현금카드 위변조사건 직후 금융당국이 범민관대책기구를 구성하고 급기야 ‘스마트카드 전면 도입’이라는 해법을 내놓은 사례는 적극적으로 참고해볼 만하다. 주무부처의 지혜로운 선택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