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진 디지털경제부장 jsuh@etnews.co.kr
‘5∼10년 후 우리나라를 먹여살릴’ 차세대 성장동력 찾기가 한창이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산업자원부·정보통신부·과학기술부 등 3개 부처가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10대 미래전략산업군’ ‘9대 품목’ ‘50대 기술’들이 바로 그것이다. 각계의 전문가들이, 아직은 투자단계지만 5∼10년 후에는 국가의 주력 기간산업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 것들이다. 정부는 3개 부처가 각기 발굴한 내용을 토대로 오는 7월까지 단일안을 마련해 발표한다고 한다.
차세대 성장동력 찾기는 기업이나 국민들에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거해주고 비전을 갖게 해준다는 점에서 역대 정부마다 심혈을 기울였던 핵심 프로젝트의 하나였다. 60∼70년대 몇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발굴된 섬유·합판·가발 등 노동집약적 경공업, 철강·기계·화학 등 자본집약적 중공업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80년대에 빛을 보기 시작한 전자(가전)·조선·자동차산업도 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IT코리아 건설을 이끈 반도체·컴퓨터·통신기기 등 IT트로이카 산업군에 대한 투자도 90년대부터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참여정부가 출범과 함께 새 동력 찾기에 나선 것은 IT트로이카산업군을 잇는 21세기 초반의 기간산업을 발굴한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물론 참여정부의 새 동력 찾기는 과거 패턴과는 조금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 현재의 주력 기간사업인 IT트로이카산업군이 고가 첨단제품에서는 선진국과의 기술격차가 상존하지만 저가 범용시장은 중국에 추격당하는 이른바 넛크래커(nut-cracker) 현상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60∼90년대가 ‘현재보다 한단계 전진하기 위한 토대 찾기’ 시대였다면 지금의 동력 찾기는 과거의 성장기조를 ‘유지’하기 위한 절박감에서 비롯됐다는 표현이 가능할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3개 부처가 내놓은 차세대 성장동력 계획들이 명칭과 발굴 명분은 다르지만 많은 부문이 겹치고 비슷비슷한 것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앞으로 거의 모든 산업분야에서 모티브가 될 것으로 보이는 홈네트워크·유비쿼터스·바이오신소재·차세대반도체 등은 3개 부처의 계획에 모두 포함돼 있다. 물론 이것을 나쁘게 바라볼 것만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찾아 육성해야 할 성장동력의 큰 줄기가 유관부처간 불협화음 없이 결정될 수도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번 차세대 동력 찾기 과정을 통해 한동안 잠복해 있던 3개 부처의 고질적인 업무중복 문제가 다시 표면 위로 부상했다는 지적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내에 유사한 생각을 갖고 비슷한 업무를 추진하는 중앙부처가 3개씩이나 존재한다면 이는 국가적으로 큰 헛점이 아닐 수 없다. 단일안이 도출된다해도 각 부처의 고유업무 차원에서 저마다의 계획들을 별도로 추진하겠다고 한다면 그 후유증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각 부처는 IT가 발전하면서 산업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는 상황론을 들먹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같은 사안을 놓고 3개 부처가 서로 다른 입장에서 접근하고 발굴하며 육성에 나서겠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진정한 의미의 역할 분담이 필요한 때다. 역할분담이란 어느 분야는 산자부가, 또 어느 분야는 정통부가 맡아 하자는 나눠먹기식 개념이 아니다. 가령 큰 틀에서 보아 성장동력의 발굴, 창출계획 수립, 산업육성과 같은 과정을 구조적으로 파악해 각 부처 업무의 고유 특성에 따라 분담하자는 것이다.
범국가적으로 절박한 심정으로 찾고 있는 차세대 성장동력은 바로 이런 구조적 접근을 통해 발굴되고 육성되어야만이 본래의 취지에 부합할 것이다. 또 이같은 접근방식이야말로 경계가 모호해진 21세기 산업의 특성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