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그들`의 힘

 51년 도쿄예술대의 한 대학원생이 일본 최초의 녹음기 시연장에 들어서서 이른바 ‘VIP이펙트’라는 기기를 살펴보고 있었다. 마침 기기는 작동하지 않았다. 음악도였던 ‘그’는 진동과 소리왜곡 등 제품 설계상 개선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설계담당 공장장은 이 ‘건방지지만 똑똑한’ 학생을 다시 보게 됐다. 2명이었던 이 회사 창업주들은 이 비범한 천재를 9년이나 쫓아다닌 끝에 음악을 함께 한다는 조건을 달아준 후에야 간신히 영입에 성공했다. ‘그’의 업적은 워크맨, CDP, 미니디스크, 컬럼비아 영화사 인수건, 플레이스테이션 대박 등이 말해준다. 그는 오는 20일 이사회에서 16억엔의 퇴직공로금을 받고 이 회사를 떠난다.

 70년대 중반 초등학생이었던 ‘그’는 우연히 책에서 우표판매 아르바이트 광고를 보고 난 후 우표상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대신 자신이 직접 나서면 더 큰 돈을 벌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를 시행에 옮겼고 그대로 이뤄졌다. 그가 대학에 진학했을 때 컴퓨터 제조업체들이 대리점 관리의 비효율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 삼아 컴퓨터를 직접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른바 ‘다이렉트 경영’으로 세계 컴퓨터업계 1위 업체의 CEO가 됐다.

 지난 90년 그룹내 이동전화사업 책임자로 임명된 ‘그’는 회사의 운명이 선택과 집중에 있다고 보고 결단을 내린다. 은행가 출신인 그는 수십년 동안 28개 분야에 걸쳐 있던 그룹의 사업분야를 3억5000만달러나 들여 2년간 정리한다. 적자인 TV사업, 앞가림에 급급한 케이블사업 등도 지체없이 퇴출시켰다. 유일한 희망인 휴대폰을 선택해 집중, 6년만에 모토로라와 에릭슨을 제치고 30%의 점유율로 세계 정상에 올랐다.  

 소니의 전 회장 오가 노리오, 델컴퓨터의 CEO 마이클 델, 노키아 회장인 요르마 올릴라 등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이다.

 IT업계에서 회자되는 탁월한 기업인들의 얘기는 쇠락한 기업을 일으켜 세우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번뜩이는 영감으로 국민들에게 희망을 일깨웠다. 그들은 탁월한 직관력에 지휘력, 그리고 알수 없는 영역의 ‘그 무엇’까지 더해서 세계 산업계의 풍향계를 정하고 국력의 향방까지 가늠하게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신경영 선언 10년째를 맞이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천재경영자 육성’을 또 다시 강조하면서 산업계에 새로운 화두를 던져주고 있다.

 삼성이 한국경제의 엔진으로 단련되고 있는 것도 결국 ‘10년 후’를 걱정하자며 대비를 독려한 이 회장의 직관력과 파워경영 덕분으로 볼 수 있다. 천재경영인 육성론을 내세우는 그의 주장은 최근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이 회장은 기업이나 개인에게 ‘10년 후’를 주문한 데 이어 이제는 ‘어떤 탁월한 경영자를 앞세워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실현할 것인가’를 일깨우고 있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은 사내 기강 확립, 이웃 경쟁사와의 협력, 투명회계 압박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주가를 올릴 방법과 회사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 입장이다.

 지금 우리는 확실히 오가 노리오, 마이클 델, 요르마 올릴라와 같은 경영인들이 보여준 직관과 경험과 지식으로 무장된 그 탁월함에 목말라하고 있다.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 최고경영인에게 요구되는 것도 이것이다.

 이런 가운데 나온 이 회장의 화두가 반가우면서도 아쉬운 이유는 “왜 이러한 인재육성의 필요성이나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경제를 걱정하는 재계 총수의 고뇌의 목소리가 정부당국자의 목소리보다 더 무게있게 와닿는가”하는 의문 때문이다.

 

 <이재구부장 j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