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삼성 반도체 공장과 정부

◆이택 취재담당 부국장 etyt@etnews.co.kr

 “삼성전자도 본사를 미국으로 옮겨야지. 그러면 한국에 투자할 때 생색내고 대우받을 수 있으니 이참에 확 저지르는 것도 한 방법이야.” 한 벤처기업인의 냉소 섞인 농담이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증설 논란을 두고 한 말이다.

 삼성반도체 화성공장 증설문제는 다분히 경제논리와 정치논리의 충돌로 비친다. 삼성은 공장 증설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 최대 수출품 반도체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기업 입장에서 공장의 증설과 신설은 완전히 다르다. 투자비용이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2∼3개의 공장을 운영하려면 고급인력의 확보, 물류비용, 물·전기와 같은 인프라 문제 등 난제도 수두룩하다. 기업으로서는 이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경쟁력에 반영된다. 지금은 삼성반도체가 세계 최강이지만 앞으로도 그러하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정부가 최우선으로 고려할 것은 국가 산업 경쟁력이라는 논리다.

 정부는 부처별로 뉘앙스의 차이가 있지만 일단 부정적이다. 엄연히 수도권 집중을 억제하는 규제법이 존재한다. 더구나 지방 균형 발전을 국정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참여정부는 완강하다. 삼성반도체 공장이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 들어선다면 지방 균형 발전의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대통령의 ‘코드’와 정확히 일치한다.

 물론 정부는 고민중일 것이다. 가뜩이나 경제가 불안하고 산업 경쟁력 저하가 걱정되는 상황이다. ‘법대로’만 외치며 ‘현실’을 ‘나몰라라’하기에는 명분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삼성 화성 공장 증설은 ‘된다’ ‘안된다’를 오락가락하고 있다. 지금쯤 정책 당국자들은 정치와 경제 논리를 접합한 묘수 찾기에 전전공긍하고 있을 것이다.

 정부가 가라고 한다 해서 무턱대고 갈 기업은 없다. 기업은 이익을 먹고 사는 집단이다. 개발독재시대라면 모르되 21세기 기업들이라면 누구나 주판알을 튕긴다. 단기건 장기건 ‘남는 장사’라는 확신이 설 때 비로소 움직인다. 그렇다면 정부는 여건을 조성하고 유인책을 먼저 제시하는 것이 순서다. 기업이 공장을 이전하면서 감수해야 할 경쟁력 저하를 상쇄할 만한 ‘내용’이 있어야 한다. 세제나 인력, 인프라 조성 등은 기본이다. 물론 생색내기 수준이면 곤란하다.

 이미 외국인투자에 관한 한 우리 정부의 ‘기준’은 세계적이다. 역차별 이야기가 나오지 못할 정도로 국내 기업에도 비슷한 잣대를 적용하라는 것이다. 이조차 없이 정책이니 따르라거나 지방 발전의 명분에 동참해달라는 설득은 권력의 압력일 뿐이다. 그래서는 결국 기업과 경제를 죽인다.

 결정 역시 빨라야 한다. 기업은 글로벌 시대에서 분초를 다투는 피말리는 경쟁을 하는중이다. 투자시기를 한번 놓치면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IT산업이다. 다급하다는 것이다. 연말에 검토, 결정한다는 정부 발표에는 도사리고 있는 변수가 너무 많다. 총선이 기다리고 있다. 이도 저도 아닌 채 자칫 결정이 내년 이후로 넘어가면 부담은 해당 기업이 떠안게 된다. 정치 논리가 경제 논리를 압도하는 순간 경제에 주름살이 지는 예는 그동한 지겹도록 보아 왔다. 

 참여정부의 또 다른 국정지표는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이다. 투자하기 좋은 나라,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 첫 단추는 각종 규제 완화다. 국내외 기업인들을 대상으로한 모든 설문조사에서 늘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명제다. 이것도 소중한 가이다. 이러다간 본사를 외국으로 이전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기업 운영까지 정부가 대신하라는 비아냥이 나올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