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전기,전자,통신,그다음은

 한국의 전기산업은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할 만하다. 여름철이면 어김없이 전기절약 캠페인이 벌어지지만 결코 모자라서가 아니다. 과소비를 하지 말고 절약하자는 뜻에서다. 전기의 질도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전기가 불안정해 전구가 나가거나 전자제품에 문제가 생기는 일은 거의 없다.

 지금은 한국 최대 공업도시가 됐지만 어릴적 울산은 시내를 빼고는 전기가 공급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정확히 196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호롱불 아래서 자랐다. 그러다 석유화학단지가 생기면서 전기라는 것을 맛보게 됐다. 30촉 전구알 하나의 위력은 정말 대단했다. 온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듯했다.

 정작 양과 질에서 뒤지지 않는 전기의 덕을 가장 톡톡히 본 곳은 전자산업이다. 한국 전자산업의 효시도 이때부터였다. 셀 수 없을 만큼의 많은 건전지를, 그것도 자주 갈아끼워야 했던 커다란 진공관 라디오가 플러그만 꽂으면 되는 자그마한 트랜지스터 라디오로 바뀌었다.

 좀 과장하면 집채만한 오디오로 이미자의 구성진 동백아가씨도, 최정자의 카랑카랑한 처녀뱃사공도 들을 수 있었다. 모깃불을 피워놓고 흑백TV 한대로 온동네 사람들이 모여앉아 김일의 프로레슬링도 즐겼다.

 60년대가 전기의 시대였다면 70년대는 가전의 시대였으며 80년대는 컴퓨터의 시대였다. 전기는 각 가정과 사무실을 무대로 전자제품의 소비를, 오늘날과 같은 전자산업을 일으킨 밑거름이 됐다.

 90년대부터는 또 다른 세상을 맞이했다. 통신의 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전화기가 전부이던 통신수단이 무선호출기로, 휴대폰으로, 초고속 인터넷으로, 무선랜으로 하루가 다르게 발전, 또 발전했다. 한국의 통신 인프라 역시 전기와 마찬가지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동통신의 발달은 휴대폰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려놓았고 초고속 인터넷의 확산은 게임과 콘텐츠의 급성장으로 이어졌다. 삐삐로 통하던 무선호출기는 과거의 유물로만 남았고 흑백 휴대폰도 사라진 지 오래다. 64화음에 26만컬러, 카메라까지 달려있는 한국의 휴대폰이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

 그러나 다음이 문제다. 전기, 전자, 통신 그 다음은… 물론 콘텐츠라는 유망주가 눈앞에 어른거리고 있다. 통신을 이용한 온라인게임산업은 한국이 세계적인 메카로 부상했다. 방송·영화와 같은 콘텐츠도 동남아에 한류열풍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아시아의 할리우드로 도약하고 있다. 준·핌과 같은 브로드밴드 멀티미디어 콘텐츠도 등장했다.

 그럼에도 콘텐츠산업이 반도체와 휴대폰의 명맥을 이를 확실한 노다지가 돼어줄지는 아직 미심쩍다. 그러기에 차세대성장동력을 찾는 일은 무엇보다 시급하다. 참여정부가 이 일에 매달리는 것은 다행스럽다. 전기가 전자산업을, 전기와 전자가 통신산업을 일으켰다면 그 다음은 자명하다. 전기와 전자, 통신이 하나로 접목되는 분야다.

 자동차야말로 이 세가지를 결합하면서도 눈에 보이는, 손에 잡히는 최대 산업이다. 다행히 차세대성장동력 후보군에 미래형자동차가 눈에 띈다. 하지만 전기자동차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자동차는 이미 예전의 기계덩어리가 아니다. 굴러다니는 전기제품이요 로봇이자 정보서비스단말기다. 전기자동차가 속속 출현하고 있고 인공지능과 텔레매틱스의 핵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미 서구와 일본의 자동차 메이저들은 최고급 전자·통신인력 확보에 여념이 없다.

 국내 자동차산업은 아직 열악하다. 한국의 자동차에 최고 수준의 IT엔진을 달아 세계를 누비게 할수는 없을까.   

 <유성호부장 shy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