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열매를 거두려면

◆이재구부장 jklee@etnews.co.kr

 지난 8일 세계 벤처기업들의 영원한 모델인 미국 MS의 CEO인 스티브 발머가 폭탄선언을 했다. “스톡옵션을 더이상 발행하지 않겠다. 직원에겐 주식으로 보상해 주겠다.” 28년간 MS와 함께 한 그의 말이 이어졌다. “또 다른 성장의 28년을 위한 것이다.”

 기다렸다는 듯 인텔·델·아마존 같은 회사들도 가담했다. 왜 IT업계 성장의 대명사인 MS가 그같은 선언을 해야만 했는가.

 미국은 일반적으로 임직원들이 스톡옵션을 행사할 때 소요되는 예산을 이른바 ‘비용’으로 처리해 자금을 축적해 두어야 함에도 불구,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미국 에너지 회사 엔론의 파산은 그 극단적인 결말이다. 게다가 최근 미국의 분위기는 회계 투명성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IT업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MS의 이 선언을 심각한 IT업계 미래와 관련한 중대한 선언적 의미를 되새겨봐야 한다.

 PC용 OS와 인터넷검색 및 DB 등으로 성공한 MS조차도 이제 더 이상 스톱옵션 비용을 축적하는데 부담을 느꼈음직 하다. 세계 최고의 DBMS회사인 오라클이 피플소프트를 잡아삼키려 하는 것도 결국 성장의 한계를 느꼈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세계 IT경기를 보면 2000년 이래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고 PC구매 주기는 점점 더 길어만 가고 반도체경기 전망치는 먹구름 낀 하늘을 보는 것 같다. 이대로 가다간 제 아무리 MS라고 해도 더이상 버티기 힘들 것 같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적당한 시간에 적당한 장소(Right time, right Place)’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사 직원들을 백만장자로 만들어주던 MS가 아니던가. 포도가 익기를 기다리듯 스톡옵션이란 과일이 영글어가는 것을 기다리는 시간들이 얼마나 달콤했던가. 하지만 이제 그 모든 것이 끝난 것 같다.

 MS의 실적을 보면 지난 2000년 서류상 MS의 옵션은 160억달러 이상이었으나 옵션이익은 2002년 50억달러로 떨어졌다.

 발머가 말하는 “더 좋은 사람들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말은 분명히 맞는 말이다. 객관적으로 시장호전 전망이 흐리고 스톡옵션주 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기존방식은 더 이상 달콤한 유혹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발머는 틀렸다. 이제 기업가 정신, 또는 벤처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내가 열심히 해 회사에 이익을 내도록 하고 과실을 챙겨간다’는 생각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 아닌가.

 외신들은 월스트리트의 그 어느 누구라도 MS가 주식을 발행하면 수익에 영향을 미쳐 향후 MS의 이익이 15∼30%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제 시각을 한국으로 돌려보자.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천정부지로 솟아 오르던 벤처기업의 주가는 하락일로에 와있다. 스톡옵션으로 화제가 된 진대제 정통부장관이 몸담았던 삼성전자 등 몇몇 실적좋은 기업(한국기업들은 스톡옵션용 비용처리를 회계상에서 하고 있다)을 제외하고는 스톡옵션에 기대걸기 힘들게 됐다. 오죽하면 지난 연말에 벤처기업 직원들이 스톡옵션 행사를 취소하겠다고 했겠는가.

 이런 마당에 최근 중기청 집계결과는 더욱 놀라운 사실을 보여준다. 지난해 3000억원인 창업투자조합 결성액이 올들어 상반기 중 100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톡옵션이 휴지조각으로 변하고 투자조합으로부터 받을 지원기금마저 고갈된 상태에서 무슨 돈으로 열을 내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을 발휘하고 기업을 일구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