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이공계 공직진출 확대

“엄마 아빠가 계속 야단치면 나 이다음에 이공계 갈거야!” 이공계 출신 부모가 야단이라도 치면 아이들이 나름대로 반항하며 내뱉는 말이란다. 대덕연구단지에 떠돈다는 우스갯소리다. 하지만 전혀 우습지 않다. 오히려 절망과 자조, 한탄이 배어나온다. 온라인세계로 자리를 옮겨도 상황은 비슷하다. “변호사랑 결혼한 내 동생, 그리고 치과의사랑 결혼한 사촌동생, 나만 보면 ‘언니, 나는 박사들이 이렇게 사는 줄 몰랐어’.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 뿐, ‘남산골 선비들이 돈 많아서 존경받았니?’”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어느 부인의 말) “내년 병역특례로 대기업 입사가 확정됐지만 기술부서가 아닌 경영관련 부서에 지원하겠다” (같은 사이트의 서울공대 박사과정 학생)

 어쩌다 이지경까지 왔는지 몰라도 이공계 문제는 참여정부 최대의 숙제 가운데 하나가 됐다. 소득 2만달러시대를 열려면 과학기술의 뒷받침이 기본이다. 이공계 인력은 그 선두에 서야할 사람들이다. 하지만 지금의 사정은 이처럼 ‘허무개그’ 수준이다.

 다행인 것은 정부가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는 사실이다. 논란이 있겠지만 이공계 기피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루려면 역시 정부의 선도가 필요하다. 이공계 공직 진출 확대방안이 기대를 모으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이상 방치하기 어려운 사회병에 메스를 들이대는 첫 과정인 셈이다.

 당초 상당한 저항과 반발이 예상됐지만 정부안은 현실화될 가능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베이징 발언에 이어 김진표 부총리까지 이공계 공직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앞장서고 그 영향이 동심원을 이루면서 사회 전분야로 파급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이공계의 양적 팽창에만 초점을 맞추다가 자칫 숫자의 오류에 함몰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공직의 몇% 이상을 이공계로 채우는 것은 그야말로 기준치에 지나지 않는다. 정책의 성공을 담보로 하기 위해서는 행정직과 통합되는 기술직의 경쟁력 제고를 겨냥한 대책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기술직이 행정 및 관리, 정책 생산능력이 행정직에 비해 뒤진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 문제를 그대로 두고 머릿수만 늘리며 ‘만사 OK’라면 할 말이 없다.

 필요한 것은 기술직 출신들에게도 보직관리나 다양한 정책입안 경험을 쌓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것도 제도적인 틀이 요구된다. 이공계 기술직도 고시를 거친 최고 엘리트들이다. 다만 기술직이라는 신분적 제약으로 핸디캡을 안고 공직생활을 계속한다. 그들이 행정직에 자유롭게 진출하고 경험을 축적했다면 사정은 달라졌을 것이다. 법대 출신 공직자가 기술이론이 필요한 직위를 훌륭하게 소화한다면 반대의 논리도 성립한다.

 관료사회보다 더 타이트한 기업조직만 봐도 알 수 있다. 세계적 초일류기업 삼성전자만 해도 윤종용 부회장을 비롯해 반도체 이윤우 사장, 정보통신 이기태 사장 등 주요 전문경영인들은 모조리 공대 출신이다. 거대기업 CEO는 기술뿐만 아니라 재무·인사·조직관리까지 최고의 전문가 반열에 올라야 한다.

 전향적인 정부의 이공계 공직 진출 확대방안은 실현되어야 한다. 더불어 기술직 출신들에게 교육 및 훈련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삼성만 해도 테크노MBA를 300명 넘게 길렀다. 그 다음에 보직경쟁을 시켜라. 이공계는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그동안 이 나라를 먹여살린 것만으로도 능력은 입증됐다. 이제는 양적 불균형을 시정하면서 ‘질적 균형’도 함께 고려해야 할 때다. < 이택 취재담당 부국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