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방폐장, 어떻게 할 것인가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에는 화장실이 없기로 유명하다. 세계에서 가장 호화롭고 아름답다는 베르사이유 궁전에 왜 화장실이 없는지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우아한 건축물에 지저분한 화장실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황실의 배려(?)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궁전에 살거나 드나드는 사람들은 고귀한 신분이어서 굳이 화장실이 필유없음직도 하다. 아랫 것들을 시켜 배설물을 받아내게 하면 그만이다. 당시 파리에는 화장실문화가 따로 없었다는 또 다른 설도 있다. 화장실이 없어 집집마다 배설물을 요강같은 것에 받아내 밖에다 버렸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길거리가 항상 질퍽거렸다는 뒷얘기도 있다.

 화장실을 집안에 들여놓고 사는 현대인들에겐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얘기다. 하지만 현대에도 버젓이 베르사이유 궁전과 같은 건축물이 있다. 원자력발전소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유는 다르다. 아름다움을 더하기 위한 배려도 아니요 화장실문화가 없어서는 더더욱 아니다. 배설물이 너무나 위험해 누구도 가까이 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고리를 시작으로 월성, 영광에까지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섰고 가동중이다.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배설물인 방사성폐기물은 인체에 치명적이다. 아직도 세계인들의 뇌리속엔 체르노빌의 악몽이 잊혀지지 않고 있다.

 안면도·굴업도가 후보지로 거론됐지만 안전성과 주민들의 반대로 끝내 무산됐다. 지금은 위도가 후보지로 떠올랐지만 우려와 반대의 소리는 여전하다. 원자력은 너무 위험하므로 사용을 중단하고 폐기해야 한다는 소리부터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한 행정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까지 반대의 목소리는 다양하다. 하필이면 왜 쓰레기매립장·화장장과 같이 혐오스럽고 더군나다 위험하기까지 한 방폐장을 우리 고장에 지으려고 하느냐는 감정섞인 목소리도 있다.

 모두 일리가 있고 귀담아 들어야 하는 지적이다. 최고의 쓰레기 배출량을 자랑하는 서울시민들조차도 서울에 쓰레기매립장을 건립하는 데는 쌍수를 들고 반대한다. 가장 인구가 많은 서울이지만 청계산에 화장장을 만들지 못하게 하려 한다. 하물며 방폐장을 짓겠다는 데 심정이 오죽하랴.

 하지만 이제는 계속 반대만 할 때가 아니다. 원자력발전소는 계속 돌아가고 있지만 지난 20년 동안 방폐장 건설은 지연돼왔다. 원전마다 임시저장소를 두고 있지만 빠르면 5년, 늦어도 50년 안에는 임시로 방폐물을 저장할 곳마저 없다. 그때가 되면 좋든 싫든 원전가동을 중단해야 할 처지다.

 원전은 국내 전기생산량의 40%를 담당하고 있다. 당장 원전가동을 중단한다면 IMF 사태는 아무것도 아니다. 화력발전으로 대체한다 하더라도 한해 310억달러에 달하는 석유 수입액이 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현 수입량만큼의 석유를 추가로 확보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가능하다고 치더라도 당장 200억달러 이상의 무역적자를 보게 된다. 공장은 물론 각 가정마다 에너지 비상이다. 물 쓰듯 하는 전기료도 배 이상 올려야 한다. 외국인투자유치는 고사하고 한국공장들도 앞다퉈 해외로 빠져나갈 것은 불을 보듯 훤하다. 고용문제도 심각해진다. 국민소득 2만달러 창출은 고사하고 5000달러 이하로 떨어질 판이다.

 개개인의 안전과 후대에 물려줄 자산인 환경보호를 위해 원전중단과 폐기가 온국민의 뜻이라면 정부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그로 인한 반대급부까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지금도 수많은 이들이 방폐장보다 더 위험한 임시저장소와 핵폭탄과 같은 원전을 바로 뒷뜰에 두고 살아가고 있다. 이들의 희생과 용기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한국의 발전과 성장, 그리고 오늘날의 생활수준 뒤에는 멋도 모른 채, 아니면 반강제로 원전을 안고 사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이들은 오늘도 임시저장소에 중저준위는 물론 고준위 방폐물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을 불안하게 지켜보며 살아가고 있다.

 원전가동을 중단하고 폐기할 때는 하더라도 지금은 당장 급한 불인 방폐장 건설에 온국민의 지혜를 모을 때다. 원전중단과 폐기는 그 후에 논해도 늦지 않다.

 <유성호부장 shy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