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018, 하나로, 정통부

 1000억원을 투자, 1년여만에 그 4배가 넘는 4000억원 이상으로 불릴 수 있을까. 통신업계에서는 그런 ‘초대박’이 실제로 터진 적이 있다. 지금은 이름도 잊혀진 ‘한솔PCS’, IMF 위기에서였다. BCI와 AIG라는 외국계 펀드가 나섰다. 당시 관계자들은 대략 주당 8000원 안팎에서 외자가 들어왔다고 기억한다. 한솔은 외자유치 후 1년여만에 KTF에 합병됐다. 주당 매각대금은 3만5000원 정도였다고 한다. 한솔 관계자들은 “BCI가 2500억원, AIG가 1000억원 가량을 투자했으니 단순계산만으로도 4배 이상을 남겼다”며 혀를 내둘렀다. 물론 외국인들이 올린 수익은 고스란히 한국인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다. 남겨진 것은 국부유출 시비와 ‘돈의 성격’을 제대로 따지자는 반성문이었다.

 IMF 이후 KT·KTF·두루넷 등 내로라하는 기간통신사업자들도 전략적 제휴를 맺고 외국자본을 끌어들였다. 마이크로소프트·BT 등 세계적 거인들이 참여했다. IMF도 슬기롭게 극복했다. 하지만 한솔의 예와는 달리 이들이 대박을 터뜨렸다는 소식은 없다. 이들은 수익만을 쫓는 펀드가 아니라 말그대로 파트너로서 ‘투자’를 한 것이다. 게다가 수익이 난다면 회사를 팔아치울 수도 있는 1대주주(한솔의 외국펀드가 1대주주)가 아닌 2∼3대주주로 들어왔다.

 하나로통신의 증자를 두고 통신판 전체가 들썩이고 있다. 갈등의 본질은 간단하다. LG는 차제에 경영권을 확보해 통신사업에 승부를 걸겠다는 심사다. SK텔레콤과 삼성전자 등 대척점에 있는 주주들은 경쟁관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재계의 전략사업군으로 통하는 통신판 다시 짜기에 어찌 이해가 일치하겠는가.

 물론 외형적으로는 주당 가격차이가 논란의 핵심이다. 여기에 외자유치라는 촉매제가 더해졌다. 기업이란 저마다 주판을 튕긴다. LG가 자사 이익을 위한 전략에 드라이브를 걸었다면 삼성전자와 SK텔레콤 역시 마찬가지다. 주주들의 이해에 반하고 손실이 불가피한 조건이라 판단했다면 이를 수용할 경영진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3사 모두 논리와 명분이 있다. 이 때문에 서로 팽팽한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다.

 문제는 사태를 풀어나가고 해법을 찾는 과정이다. 3사의 최근 행보는 브레이크가 없다. 이견을 해소하는 노력보다는 서로에게 ‘굴복’을 요구하는 것처럼 비쳐진다. LG가 기자회견을 하면 SK텔레콤이 보도자료를 돌린다. 맞대응의 연속이다. 마치 언론을 통한 전쟁에 익숙한 ‘정치판’을 연상시킨다. 해결이 아니라 일만 더 꼬이는 형국이다.

 이쯤되면 사람들은 정부를 쳐다보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정통부는 ‘개입불가’만을 외친다. 개별기업의 경영권에 직결된 사안에 섣불리 개입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뒷짐만 지기에는 사안의 중요도와 긴박성이 심각하다.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시’와 ‘압박’은 사라져야 하지만 시장 전체, 내지는 정책 방향과 관련된 이해조정은 고유권한이다.

 누구의 손을 들어주라는 말이 아니다. 정부가 결정하라는 것도 아니다. 당사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이견을 좁힐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고 거중조정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중재는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 오늘 오후면 임시주총 결과가 나온다. 하나로의 사태가 어떤 방향으로 종결될지는 모르겠지만 통신정책과 외자의 성격에 대한 정부 입장이 못견디게 궁금하다.

 

 <이택 취재담당 부국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