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부근의 판교지역에 1만평 규모의 매머드 ‘학원단지’를 세우겠다는 건설교통부 발표가 있자 일반국민에서부터 교육시민단체 및 야당까지 반대 행렬이 이어졌다. 교총은 물론 전교조 대변인까지 나서서 “건교부 안은 사교육과 공교육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사교육 팽창시 공교육이 위축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간과한 것이라서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교육계까지 가세한 ‘판교단지사태(?)’를 가져온 근본 원인은 고교평준화 이후 강남 쏠림으로 대변되는 공교육 토양 붕괴에 대한 불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강남 쏠림현상은 다름아닌 고교평준화 정책 속에서 보다 나은 교육환경을 찾으려는 경쟁적 노력의 소산으로 볼 수 있다. 정부가 이공계 공직자 진출 확대를 발표하면서 IT분야 활성화를 천명한 마당에 이같은 논란이 불거졌고 십수년동안의 고교평준화를 거친 후에 나온 반향이란 점에서 더욱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정부의 이공계 관련 조치는 IT분야가 미래를 먹여 살릴 것이고 그래서 이분야의 경쟁력 있는 인물을 적극 천거하겠다는 조치가 아니었던가.
9·5부동산 대책과 그 반향은 ‘베이징에서 나비가 날개를 펄럭이면 뉴욕의 날씨가 달라진다’는 나비효과를 생각케 한다.
이쯤에서 정부도 한번쯤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보다 바람직한 교육 토양마련을 위해 의지를 보이고 신경을 써야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글로벌 경쟁의 폭풍속에서 경쟁력을 갖춰가야 할 우리의 대학생은 물론 고등학생들도 경쟁의 예외지대에서 방임된 채 있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향평준화’로 비난받고 있는 고교평준화를 경쟁체제로 환원시켜야 할 이유는 경쟁력있는 문과학생은 물론 이공계 인력까지 이 좁은 국토에서 마련해야 한다는 당위성에서 출발한다. 정부가 어느새 외국어고등학교다, 과학고등학교다 해서 경쟁체제를 인정하고 있는 상황은 그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해 준다.
첨단 IT분야에서 우리와의 격차가 3∼4년정도밖에 나지않는 중국의 거센 추격은 특히 우리를 긴장시키고 있다. 우리가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디지털TV 기술개발 현장은 섬뜩할 정도다. 삼성전자나 LG전자는 200여명 정도의 디지털TV연구원으로 2000∼3000명씩의 박사급 연구원을 가진 중국 하이얼이나 창훙같은 회사와 싸우고 있다. 중국과 대비되는 이 한가지 사례만 봐도 정책 당국자들이 교육의 질적 경쟁력·유능한 인재를 달궈내기 위해 치열한 경쟁적 토양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되고도 남는다.
정부가 9·5부동산 대책속에서 함께 내놓은 ‘판교학원단지’의 의미는 경쟁적 토양이 상실됐음과 함께 글로벌 경쟁체제 속에서 우수 인재양성의 필요성을 부각시켜 준 또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경쟁을 요하지 않는 토양속에서도 많은 의욕있는 젊은이들이 훌륭한 인재로 성장한다. 하지만 글로벌 경쟁시대에 일찍부터 세계를 경쟁상대로 삼는 글로벌 인재 배출의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 2만달러시대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것보다 우선돼야 할 일이다.
부동산 안정을 위해 부수적으로 발표된 판교 학원단지조성계획이 나비의 펄럭임처럼 우리의 교육제도를 더욱 건설적이고 경쟁력있는 환경을 만드는 쪽으로 영향을 미쳐주길 바란다면 지나친 기대일까.
다윈은 “자연도태는 언제라도 작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힘”이라고 갈파한 바 있다. 태풍 매미가 할퀴고 지나간 마당에서 그래도 여전히 우리의 희망인 우수한 인재를 길러낼 교육 토양의 경쟁력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국제기획부·이재구부장 j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