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대제 정통부장관이 스타 CEO출신이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능력만큼이나 튀는 스타일로 유명했던 그는 한국의 ‘대표 기업인’이었지만 컴덱스 개막연설자로 등장하면서 업그레이드된다. 전세계 IT기업인과 언론이 운집한 컴덱스에서 연설한다는 자체만으로 ‘진 사장’은 월드스타의 대열에 올랐다. 그는 IT분야에 관한한 ‘거물’이 됐고 지금은 한국의 핵심부처 각료가 됐다.
세계적인 IT전람회, 예컨데 컴덱스쇼, CES쇼, ITU제네바텔레콤, 세빗 같은 행사에서 연설하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다. 빌 게이츠나 앤디 글로브(인텔창업자)급 인물들이 초청 받는다. 한마디로 전세계 IT산업을 움직이는 ‘정상’들이 연단에 서는 것이다. 이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전파를 타고 곧바로 지구촌으로 전달된다. 이들이 예견하는 산업과 기술의 미래는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관련 기업들의 교과서가 된다. 그래서 메이저 IT전람회의 개막 연설자 명단만봐도 전세계 IT권력자 분포를 쉽게 가늠해 볼 수 있다.
한국 IT산업이 폭발적 성장을 거듭하면서 월드스타로 자리매김하는 CEO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정분야 전시회나 포럼등에는 적지 않은 한국인 CEO들이 스타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최근 2∼3년 동안 4대 전람회에서 개막연설을 한 한국인은 윤종룡 삼성전자부회장, 구자홍 LG전자회장 정도가 꼽힌다. 이들은 ‘전자 한국’의 양대산맥 삼성과 LG의 최고 책임자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IT인프라와 접근성을 과시하는 한국의 위상을 감안하면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기업도 규모와 역량에 비례해 갖춰야할 조건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CEO들의 대외 활동이다. 세일즈가 해외 활동의 모든 것은 아니다. CEO주가란 말도 있듯 말 한마디가 세계 시장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한국인 CEO들이 자꾸 나와야 한다. PC시장 예측을 아무리 정교하게 한 들 마이클 델의 한마디가 시장에선 더 존중된다. 그레이크 배럿(인텔CEO)이나 이데이 노부유키(소니 회장)의 컨셉트는 곧 시장흐름이 된다. 그들 수준의 통찰력과 경영철학을 가진 한국 CEO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적어도 그간 만나 본 우리 CEO들은 그렇다. 미래에 대한 확신, 기술과 시장을 꿰뚫는 예지력, 경영이론 등 세계 어디 내놔도 경쟁력있는 인물이 즐비하다.
문제는 우리 CEO들이 알려지지 않고 또 알려지려 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나서기 싫어하는 겸양의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 정서가 원인일 수 있다. 외국 언론이나 기업인들과의 커뮤니케이션 즉 언어 문제가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경쟁사를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으려는 전략적 고려도 숨어 있다.
그래도 이제는 CEO들이 나서야할 때다. 메이저 IT행사에 적극 참여하고 자신을 알려야 한다. 해외 언론이나 분석가들과의 접촉도 늘리자. 몇몇 기업들은 이미 해외 로드쇼를 진행하고 있다. 인프라가 부족하다면 이벤트라도 만들면 된다. 오라클이나 HP 처럼 해외 기업, 학계, 언론이 모이는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여기서 CEO들의 비전을 보여줘도 좋다. 한국기업들의 덩치나 위상으로 그 정도는 충분히 소화할만 하다.
지금은 정치권력 보다 경제권력이 더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한국은 세계 12대 경제국이다. 더구나 IT분야는주변국이 아닌 중심국이다. 냉혹한 국제 경쟁속에서 제 목소리 내고 밥그릇 챙기려면 월드스타 10여명은 나와야 한다. 그러려면 CEO들이 튀어야 한다.
<이택 취재담당부국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