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외자유치를 막는 외자유치

 세계적인 유망기업들의 지역본부나 연구개발(R&D)거점을 유치하려는 노력이 범정부차원에서 경주되고 있다. 동북아중심국가로 도약하려면 우선적으로 우리나라가 외국기업들의 동북아 거점이 돼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무부처 장관들이 외국을 수시로 드나드는가 하면 코트라 같은 기관은 연일 미국, 유럽연합, 중동 지역에서 투자상담회를 열고 있다. 국내에서도 송도, 파주, 구미 등에는 초대받은 외국 기업인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외국기업투자는 최근 들어 오히려 급감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산자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99년 100억달러를 상회하던 외국인 직접투자가 올해는 10억달러 대로 줄어들 전망이라고 한다.

 문제는 우리와 달리 세계적으로는 지난 9·11이후 미국·유럽연합·중국을 중심으로 외자유치가 활발해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경우는 이미 지난해 외자유입 비중이 10%대로 껑충 뛰어 오르면서 외국인투자시장에서 미국·유럽연합과 함께 3강구도를 형성하는 한 축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한때 세계 20위권 안에 들었던 우리나라의 외자유치 능력은 갈수록 떨어져 지난해 이후 외국기업의 지역사업본부나 R&D센터를 유치한 사례는 고작 10여건에 그치고 있다. 외자유치 3강은커녕 싱가포르(46건)나 홍콩(44건) 등 경쟁국에 비해서도 턱없이 낮은 수치다. 오죽하면 이기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의 외자투자성과는 140개국 가운데 92위라고 비꼬았을까.

 한 민간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근래들어 외국기업의 유치전략은 단순한 대외개방 차원을 넘어 특정 업종이나 산업을 차별화하는 방안으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예컨대 단기적 고용창출보다는 기술이전을 강조하고 있고 반도체, 미래형 자동차, 바이오 등 첨단기술이 요구되고 수출효과가 큰 분야나 기업들이 선호되고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투자 주체인 외국기업도 투자 대상국에 요구하는 것들이 있을 터다. 예를 들면 법인세, 분양가 등에 대한 혜택이나 지원 등에 의한 투자 인센티브, 취약한 외국기업유치시스템 등의 개선이 그것이다. 우리나라의 외자유치 실적이 점점 바닥을 치고 있는 이유도 여기서 찾아지고 있다. 급신장세인 중국과 비교할 경우 법인세율은 두배, 입지(공단) 분양가는 4배나 된다고 한다. 한 조사 보고서는 이런 투자유인책으로는 외국기업들의 한국투자 결정에 고작 3%밖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꼬집고 있다. 국가차원의 관리체계도 마찬가지다. 기업유치를 지원하는 조직이나 기구는 많지만 외국인투자위원회(재경부산하)나 외국인투자지원센터(산자부산하) 등으로 나누어져 있고 지방자치단체 역시 저마다 독자기구를 운영하는 등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세계적인 유망기업들이 너도나도 기업특구나 수도권 입지를 선호하는데도 정부는 국토균형발전정책과의 상충을 들어 난색을 표하고만 있다는 점이다. 외자유치를 외치면서도 외자유치를 막고 있는 것이다. 한국 최대의 외국인투자기업인 프랑스의 카르푸가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우는 한국정부로부터 4번이나 대규모 투자인가를 받지 못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사건이다.  

 최근에 만난 한 고위공무원의 말은 그래서 더욱 충격적이다. 동북아중심국가 도약을 선언한 지난해 2월 이후 그마나 한국에 유치된 자본의 상당수는 ‘코리아’라는 브랜드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기업이나 개인적 유대관계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진단 보고서가 나온들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그 권위나 내용은 아무 쓸모가 없다. 동북아중심국가로의 도약을 시험받고 있는 지금은 국정 최고 책임자의 전략적·거국적 결정만이 필요한 때다.

◆서현진 디지털경제부장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