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마성(魔性)을 가졌다는 점에서 정치와 섹스는 똑같다고 한다. 인간의 권력의지는 그만큼 본능적이다. 누구나 정치라면 손사래를 친다. 그럼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정작 정치권 입문을 ’강권’ 받는다면 못 이기는 체 수용하고 만다. 그래서 소위 사회적 성취를 이룬 많은 사람들이 정치권으로 이동한다. 역시 정치와 섹스는 속성이 같다.
그러나 정치인에게 돈과 명예가 ‘무조건(?)’ 보장되던 시절은 끝났다.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로 얼룩지지 않고서는 권력과 명예를 동시에 거머쥘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지난 대선이 그랬고 연일 신문지상을 도배하는 비자금 기사만 봐도 알 수 있다. 정치가 봉사와 헌신이라는, 고단하지만 본래의 의미를 되찾는 직업이 되고 있다. 때문에 처음부터 입신을 위해 정치권 주변을 맴도는 인물들을 제외하고는 ‘정치’에 가까이 가려 하지 않는다.
그래도 어쩌랴. 다시 정치의 계절이다. 정치의 제 1 우선순위는 ‘표’다. 표가 된다면, 선거에서 이길수만 있다면 정치권은 어떤 선택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선거는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의 게임’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각당의 인물 영입작업에 관심이 가는 이유다.
정치권이 눈 독 들이는 단골 고객은 정보통신, IT기업인들이다. 이들은 정치적 상품성이 매우 높다. 특히 자수성가 그룹은 누구나 탐낼만 하다. 맨손으로 출발해 거대기업을 일군 성공신화 자체에 국민들은 열광한다. 정치 신인의 최대 약점인 지명도 부분에서 걱정이 없다. 세계적 기업과 하루하루 피나는 경쟁을 벌이며 승리했으니 이보다 더한 검증절차도 없다. 번듯한 학벌과 가문을 배경으로 하는 기업인은 그대로 좋다. 반대로 ‘정주영식’ 신화 창조 인물이라면 그것대로 높이 평가 받는다.
게다가 정보통신, IT기업인들은 코드가 좋다. 현 정부의 용어가 아니다. 시대정신이란 코드와 딱맞아 떨어진다. 변화와 개혁 마인드, 불굴의 도전정신과 강력한 추진력 등 21세기 한국의 원동력이 될 코드는 이들 기업인들의 대명사다. 정당의 이미지에도 큰 도움이 된다. 정치판의 싸움박질에 이골이 난 국민들에게 이들 기업인들은 신선하고 개혁적이며 전문성까지 갖춘 것으로 비친다. 또 한가지. 기업인들은 자금 지원에도 부담이 적다. 어차피 엄청난 돈이 들어갈 선거판에서 중앙당의 후원 없이 자력갱생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러니 기업인들은 정말 매력적이다.
하지만 기업인을 선거판으로 끌어들이진 말라. 아무리 총선에 도움이 되고 당선이 확실해도 그대로 놔두자. 본인이 기꺼이 정치를 하겠다면 모르되 강권은 말자. 정치도 급하지만 경제도 시급하다. 그나마 IT한국을 이끌어 온 인재들을 곶감 빼먹듯 정치권으로 데려가지 말라는 것이다. 교통사고 사망률외에 한국이 세계1등하는 분야는IT가 고작이다. 기업인들은 이제 막 국제무대에 올라섰다. 앞으로 해야할 일이 더욱 많다.
우리 사회의 보다 큰 개혁과 원천적 문제해결을 위해선 정치권 진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럼에도 정치인과 기업인은 길이 다르다. 서로 잘 할 수 있는 전공이 나뉘어 있다. 내로라하던 CEO들이 정치인으로 변신해 소리 없이 사그라드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아 왔다. 행여 낡은 정치를 참신함과 개혁으로 포장하는 대용품으로 정보통신 IT 기업인들을 활용할 생각일랑 아예 접어라. 각자 자기 자리에서 최강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국력이다. <이택 취재담당 부국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