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짖는 개

 “휴대전화의 인터넷 접속서비스와 가정에서 인터넷에 늘 접속할 수 있는 초고속 통신 등이 급속히 보급됐다.이러한 변화를 내다보고 앞서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시대가 너무 빨리 쫓아와 버렸다.”

 최근 대규모 구조조정계획안을 내놓으며 경영위기 극복에 나선 이데이 노부유키 소니 회장의 말이다. 그는 아사히신문과의 회견에서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창의성과 기술력의 대명사인 전자업계의 제왕 소니가 놓쳤다고 한 시대의 흐름은 “소니의 장기라고 할 기술지향으로 너무 나가면서 고객들을 놓쳤다”는 것이다. 특히 ‘고객에 대한 관심부재’부문은 외면할 수 없는 무게로 와닿는다.

 위기에 몰렸다가 회생해 회사를 빛내는 기업들의 모습을 보면 예외없이 CEO를 중심으로 고객중심의 사고와 결단을 확인할 수 있다.

 IBM이 90년대초 최악의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다른 회사로 이적한 한 임원은 “가장 무서운 것은 IBM이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란 오만함”이라고 위기를 진단했다. 1980년대 PC시대로의 전환 및 고객중심의 클라이언트 서버혁명을 외면했다가 혼난 이 회사는 루 거스너의 지휘 아래 조직을 고객마인드 위주로 전환하면서 ‘IT백화점’을 살려내는 데 성공했다.

 HP의 칼리 피오리나 회장 역시 조직 안정성에 기대온 직원들의 사고를 전환하고, PC고객 지원에 강한 컴팩을 인수했다. 기술과의 ‘사랑놀이’뿐 아니라 고객과의 접점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한 결과다.

 국가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요 며칠새 언론에 보도된 대로 투자유치를 위해 각국을 순방 중인 김칠두 산자부 차관이나 진대제 정통부 장관은 외자 유치 순례를 감내하고 있다.

 이보다 더욱 눈물겨운 것은 최근 일부 언론에 보도된 중국 관리의 얘기일 것 같다. 중국을 방문 중인 김 차관을 만나기 위해 무려 13시간이나 차를 타고 와서 오히려 중국에 투자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모 중국 지방관리의 얘기는 고객(?)감동 그 자체다.

 “한국에선 연고주의와 부패, 관료의 과도한 재량 때문에 기업하기가 힘듭니다.” “중국 정부는 현재 공장의 2배나 되는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할테니 투자를 늘려 달라고 요청합니다. 파격적인 조건을 내거는 중국과 각종 규제가 무성한 한국 중 어디를 선택할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는 거 아닙니까.”

 외국기업의 한국 투자환경에 대한 불만은 최근 한국경제연구원이 주한 외국기업인 69명을 설문 조사해 내놓은 ‘한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FDI) 분석’ 보고서에 나타난 그대로다. “정부 관계자들이 동북아 허브정책을 내걸고 해외에 투자유치단을 파견하고 있지만 별 실효를 못 거두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가 나온 것도 무리가 아니다.

 중국 전국시대 재상 안영이 자신의 주군에게 설파한 짖는개의 얘기는 고객모시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간접적으로 말해 준다.

 “어느 사내가 맑은 물로 좋은 술을 빚고 깃발을 내걸어 손님을 모시려고 했지만 술이 쉬도록 손님이 오지 않았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왜 손님이 안 오느냐고 물었더니 그 집 개가 무서워서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오늘날 세계 IT 1등국, 동북아 허브를 내세우는 한국이 그리도 투자유치에 고민하는 이유는 각종 규제·고임금·노사분쟁 등으로 대변되는 ‘짖는 개’ 때문이 아닐까.

 최고의 고객모시기를 하지는 못하더라도 오려는 생각을 가진 손님을 쫓지는 말아야 한다.

  <이재구 국제기획부장 j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