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산업 육성이 먼저’냐 ‘청소년 보호가 우선이냐’를 놓고 게임업계와 영상물등급위원회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산업적인 면을 강조하는 업계와 청소년보호라는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성역을 앞세운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대립이 첨예화되면서 규제를 당하는 입장인 게임업계는 단체행동이라는 최후의 수단까지 들고 나왔다.

 규제와 육성을 두고 꼬인 함수의 해답은 좀처럼 실체를 찾을 수 없다. 이제는 통신위원회까지 나서 청소년들의 게임이용요금 결제수단인 ARS를 이용한 게임이용료결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미래 성장동력산업을 담당하고 있는 주역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는 초라한 모습이 현재의 게임업계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영등위가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내놓은 잣대가 오락가락한다고 볼멘소리다. 온라인게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스토리의 짜임새와 그래픽의 사실성, 구성의 완벽을 추구해야 하는데 이에 따른 약간의 선정성과 폭력성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영등위의 심의대로라면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풍선터뜨리기’ 수준의 게임만 할 수밖에 없다고 푸념한다.

 이에 대해 영등위의 입장은 단호하다. 현재 수준의 심의에도 게임의 선정성, 사행성, 도박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데 심의를 완화한다면 청소년의 탈선은 더 큰 사회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영등위는 사후심의를 강화해서 여하한 경우에도 문제가 되는 게임에 대해선 예리한 칼날을 휘두르겠다는 입장이다.

 영등위의 주장은 백번 맞는 말이다. 게임으로 인해 사회문제가 발생된다면 당연히 규제돼야 한다. 그동안 게임업계가 영등위의 등급결정에 반발하면서도 목소리를 줄일 수밖에 없었던 것도 영등위에 대한 반발이 게임업계가 마치 청소년을 보호하지 않는 부도덕한 집단처럼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게임산업이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 게임업체는 게임을 개발해 놓고 세번의 심의 보류로 사경을 헤매고 있다. 결국 규제가 산업을 망가뜨리는 꼴이다.

 그러나 영등위의 입장에는 정작 중요한 게 빠져 있다. 바로 게임을 이용하는 사용자들의 상황이다. 이미 청소년들은 게임 이상으로 선정성이나 폭력에 얼룩진 TV나 영화, 만화 등에 무분별하게 노출돼 있다. 청소년들의 문제는 게임업체만이 아닌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다. 스팸메일이 창궐하고 있다고 청소년들에게 인터넷사용을 금지하고, 수능시험으로 인해 청소년들의 자살이 잇따르고 있다고 수능을 폐지해야 한다는 논리와 다를 게 없다.

 이제 게임은 청소년들이 가장 즐기는 문화생활 중의 하나다. 그들을 게임의 선정성이나 폭력성에서 보호하기 위해서는 규제도 필요하지만 좋은 영화나 좋은 책을 부모가 추천하듯이 가정이나 학교에서 부모나 선생님들의 지도가 중요하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즐기는 게임에 접속해보자. 그리고 그들이 갖고 싶은 아바타를 구입할 수 있도록 직접 게임머니를 충전시켜 보자. 게임에서 비롯된 사회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해법일 것이다. 게임에서 비롯된 청소년들의 문제는 결코 규제로만 풀 수 없다는 얘기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는 말이 있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지나가는 나그네를 잡아 침대에 묶고 침대에 맞추어 사람 키를 잡아 늘이거나 잘라 버렸다. 그에게 잡힌 사람들은 그 누구도 죽음을 면하지 못했다. 최근 게임업계에서는 영등위를 청소년보호라는 침대를 만들어 놓고 게임을 18세 이용가 또는 15세 이용가로 재단하는 프로크루스테스에 비유한다. 칼을 든 프로크루스테스에게 붙잡혀 침대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아테네시민의 처지를 생각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양승욱 정보사회부장 swy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