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컴덱스의 교훈

 ‘컴덱스쇼’

 IT분야 종사자들이라면 그 권위와 전통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만큼 명성을 인정받던 세계적 이벤트다. 봄·가을로 치러지는 이행사는 국내에서도 매년 산학연관 관계자들이 파견돼 출품동향이 분석되고, 그결과가 신제품개발이나 산업정책에 반영돼왔다. 예컨대 춘계 행사는 그해 진행될 시장동향을 가늠할 수 있게 해주고 추계행사는 2∼3년후 중단기적 기술흐름을 보여준다는 의미로 통했다.

 언론에서의 관심은 그래서 더 유난했다. 행사를 전후해 각 언론사마다 많게는 4∼5명씩의 기자들이 현지에 파견하는가 하면 몇쪽씩의 지면을 할애하여 대형기획물들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올해는 컴덱스에 대한 관심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에서 거의 비켜가고 마는 것같다. 그나마 관심을 가졌던 일부 언론조차도 기획물은 커녕, 지난 17일의 개막 뉴스조차도 단순보도로 처리해버렸으니 말이다.

 이번 컴덱스는 우선 출품업체 수에서 전성기 때의 20∼30% 수준으로 줄었고 IBM·오라클·도시바·소니와 같은 간판 기업들은 모두 불참했다. MS와 함께 사실상 컴덱스 역사를 써온 인텔마저 ‘MS협력관(Partner Pavilion)’에 겨우 부스 하나를 냈을 뿐이다. 참관객도 한창때의 20여만명에서 5만명 이하로 줄어들 것이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컴덱스 참가를 연례행사로 치러왔던 삼성, LG, 삼보컴퓨터와 같은 우리 기업들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한국전자산업진흥회 같은 단체가 중소기업들을 모아 운영하는 한국관이 고작일 뿐이다. IT흐름의 바로미터였던 국제 이벤트가 하루 아침에 이처럼 평범한 전시회로 전락해버린 까닭을 대체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현지의 한 언론이 90년대 세계 IT조류를 선도해온 컴덱스가 요즘에는 오히려 흐름을 쫒아가기에 바쁜 모양새로 바뀌어버렸다고 꼬집은 것은 주목할만 하다. 컴덱스는 원래 80∼90년대 PC의 발전역사와 궤를 같이해왔다. 메인프레임기반의 IT환경을 PC중심으로 바꿔놓은 1등 공신이 바로 컴덱스였다. 컴덱스가 배출한 대표적인 기업이 윈텔(MS+인텔)이다. 윈텔은 윈도95나 펜티엄 같은 주요 운용체계와 마이크로프로세서 버전을 컴덱스 개막일정에 맞춰 개발해왔을 만큼 컴덱스 신봉자였다. 이때만해도 IT환경의 대세는 PC였고 PC는 윈텔의 힘을 빌어 그 영역을 끝없이 확장해갈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PC는 지금 세계 IT환경의 중심에서 비껴나 있다. 이제 PC는 또 다른 차세대 IT환경을 구현해주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다면 컴덱스의 실수는 두가지 중 하나로 귀착된다고 할 수 밖에 없다. ‘PC중심의 IT환경을 이끌어가지 못했거나’, 세계적 관심이 이미 PC를 떠났는데 ‘PC를 계속 고집했거나’인 것이다. 분명한 것이 또 하나 있다. 컴덱스가 배출한, 한때 세계 IT환경의 중심에 있었던 기업들의 명멸이다.

 MS와 인텔만 빼고는 거의 모두 다른 기업에 합병되거나 무명의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로터스,노벨,컴팩,애시톤테이트,디지털이큅먼트,워드퍼펙트,에이서,AST리서치,볼랜드,제니스...

 올해도 컴덱스 출품 주류는 데스크톱이나 태블릿PC와 같은 PC애플리케이션, 그래픽칩,주변기기 같은 전통적인 것들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았다고 한다. 세상은 변하는데 컴덱스의 비즈니스모델은 10년 가까이 변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것을 두고 ‘전통’이라고 추겨세워 줘야 하는 것인가, ‘외고집’이라고 나무라야 할 것인가?

◆서현진 디지털경제부장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