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겨울철이면 신문 스포츠면에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선수들의 트레이드이다. 이승엽같은 프로야구 대스타가 메이저리그로 가느니, 일본으로 진출하느니 하는 거취 문제가 연일 지면을 장식한다. 소속 팀을 옮기는 것에는 반드시 ‘몸값’이라는 또다른 화제가 따라 붙는다. 프로야구만 한번 보자. 골수 팬들이야 누가 어느팀으로 유니폼을 바꿔 입느냐에 관심을 쏟지만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그들이 받는 천문학적 연봉과 계약금에 포커스를 맞춘다. 소위 ‘FA대박’이란 용어가 하루가 멀다하고 등장한다.
올해는 유난히 FA대박을 터트린 선수가 많았다. 삼성 마해영이 기아에 입단하면서 4년간 28억원에 사인한 것이 신호탄이다. 기아 진필중은 LG로 옮기면서 30억원, 현대 박종호는 삼성으로부터 20억원을 받는다. 대미는 정수근이 장식했다. 롯데로 이적하면서 4년간 무려 40억6000만원에 ‘올인’했다.
이쯤되면 신화 탄생이다. 물론 전 소속팀에 지급하는 돈과 각종 옵션을 제외할 경우 선수 본인이 쥐는 액수는 수억대 연봉이 고작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럼에도 샐러리맨들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의 거금이 오고 간다. 어디 그 뿐이랴. 어지간한 인기 종목의 대졸 스타급 선수들은 10억원대를 훨씬 넘는 스카웃비를 챙긴다. 이들이 불특정 다수 국민들에게 즐거움과 희망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몸값 치솟기를 비판할 이유는 없다. 연예인도 마찬가지지만 스타성과 희소성을 감안할 때 한국 경제 규모상 그 정도의 시장은 수용 가능하다. 프로야구 전체 평균 연봉을 따지면 기업체 과장급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테니 그들은 대박을 터트린 것이 아니라 신화를 쓴 것이다.
스타 탄생은 이공계도 필요하다. 이공계 출신들의 가장 큰 불만은 ‘사회적으로 인정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돈과 명예를 얻는데 인문계보다 불리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 아무리 삼성전자의 CEO들이 이공계 출신이라고 떠들어 봐야 현장에선 먹히지 않는다. 대통령을 비롯해 장차관 중 이공계 출신은 손꼽는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파워 엘리트군에 이공계의 설자리는 별로 없다. 이는 구조적 문제다. 그래서 정부가 나선다. 뜻있는 교수들도 동참한다. 많이 바뀔 것이다.
그래도 ‘돈’ 문제는 쉽지 않다. 가뜩이나 기초과학은 외면 받고 있다. 박정희정권 시절에는 해외거주 학자 유치사업도 했다. 지금도 계속되지만 가장 큰 걸림돌은 보수문제와 관련돼 있다. 그들에게 삶의 기반을 포기하고 애국심만으로 귀국을 종용한다는 것은 폭력이다. 한국의 히트상품을 만들고 탁월한 연구업적을 남긴 과학자, 엔지니어들의 스카웃도 사정은 비슷하다. 4년간 수십억원의 몸값을 선듯 지불하고 이공계출신을 영입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어 보지 못했다.
야구나 농구선수들에게 베팅하듯 이공계 직업인에게 투자할 수는 없을까. 어떤 사람은 대학 재학때부터 튀는 논문을 내고 가능성이 검증되기도 한다. 기업이 수억원의 연봉을 내걸고 그들을 스카웃하는 것은 시장 원리에 어긋나는 일인가. 우리 경제를 이 정도로 바로 서게 공헌한 현장직원들에게 FA대박 형식의 포상금 지급은 요원한가.
과학자, 연구원 모두에게 대박을 강요할 순 없다. 경쟁을 거쳐야 하고 경제사회 기여도를 따져야 한다. 그래도 스타로 불리는 특정소수에게는 돈과 명예를 안겨주는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 똑똑한 젊은이일수록 법조인, 의사가 되고 연예계와 스포츠계를 기웃거리는 현실이 너무 암울하다. FA대박을 터트린 선수들에게 축하를 보내면서도 엉뚱하게 이공계문제가 떠올라 씁쓸하다.
◆ 이택 취재담당 부국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