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21세기 신화창조의 조건

 올해의 키워드로 우왕좌왕이 뽑혔다. 가뜩이나 나아갈 길이 바쁜데 1년이란 세월을 허송했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이미 아득한 기억 속으로 멀어진 것 같지만 새천년, 뉴밀레니엄을 맞았던 우리들의 가슴은 뜨거웠다. 20세기에 이룬 한강의 기적을 21세기에 다시 한번 이뤄보자는 한마음 한뜻이었다. 밀레니엄 신화창조의 뜨거운 열정은 2002 월드컵 신화로 이어졌다. 안타깝게도 2003년은 신화를 열망하는 국민의 기대를 철저히 외면했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2003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줬다. 의욕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새해를 맞는 국민들의 소망은 한결같다. 21세기 신화창조다.

 2004년엔 더 이상 들뜬 마음에 우왕좌왕 하지 말고 냉철히 현실에 천착해야 한다. 21세기 신화창조의 조건은 과거와 다르다. 열띤 구호나 운동만으론 안된다.  

 20세기 신화창조는 오로지 새마을 운동과 노동력만으로 일궈낸 기적이었다. 세계를 안방처럼 누빈 상사맨들의 열정, 공장에서 열사의 땅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은 노동자들의 땀, 잘살아 보세 라는 구호가 큰 힘이 되었다.

 하지만 21세기에는 다르다. 부지런함만으로는 턱도 없다.

 혈혈단신으로 유럽에 뛰어들어 벤처신화를 이룩한 변대규 휴맥스 사장은 21세기 신화창조의 조건을 기술, 양산, 브랜드 3가지로 꼽았다.

 중국의 최대 강점은 양산이다. 이미 노동력에서는 중국과 겨룰 상대가 없다. 동북아 3국의 최강자인 일본은 여전히 기술이 경쟁력의 근간이다. 세계를 주름잡는 미국은 브랜드가 최고의 무기다.

 대한민국은 이들 3요소 중 어느 것 하나 확실하게 우위에 있는 게 없다. 중국이 위협스런 존재로 다가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3가지 요소를 고루 갖춘 21세기에 선택받은 국가다.

 21세기 열강들 중 기술, 양산, 브랜드 이 3가지 요소를 고루 갖출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미국도,일본도, 중국도 한두 가지씩은 아킬레스건이다.

 삼성 브랜드는 이제 소니의 브랜드를 위협할 정도로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섰다. 기술과 양산에서 독보적인 삼성전자는 이제 브랜드로 세계를 제패해나가고 있다.

 휴맥스만 하더라도 3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기술벤처로 출발한 휴맥스는 오랜 세월을 거쳐 세계적인 셋톱박스 양산시스템을 구축했다. 여기다 유럽시장에서 쌓은 브랜드 파워는 휴맥스가 짧은 기간 안에 일본 시장을 장악케 한 원동력이다.

 최근 코스닥 황제주로 등극한 레인콤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창업 4년밖에 안된 자그마한 벤처지만 3요소를 모두 갖추었다. 레인콤은 mp3플레이어 기술과 양산력은 물론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아이리버는 mp3플레이어에 관한한 세계 최고의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기술격차가 크지 않은 mp3플레이어시장에서 레인콤이 두각을 나타낸 것은 양산과 브랜드력을 일찌감치 확보했기 때문이다.

 이들 외에도 제2의 삼성, 제3의 휴맥스, 제4의 레인콤들이 기술과 양산, 브랜드를 차근차근 갖추며 신화창조를 위한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이들이 기를 펴고 마음껏 나래를 펼칠 수 있는 환경, 기업하기 좋은 나라, 신명나는 분위기를 가꾸는 일이다.

 이는 2004년 정부와 정치권이 할 일이자 책무다. 국민과 기업의, 국민과 기업에 의한, 국민과 기업을 위한 정부와 국회로 거듭나야 한다. 이것이 21세기 신화창조에 필요한 마지막 조건이다.

 <디지털산업부 유성호부장 shy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