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부총리제의 도입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최고통치자가 연내 도입을 천명했으니 이제는 그 시기만 남은 셈이다. 기술부총리는 과기부·산자부·정통부 등 과학기술 및 산업육성 유관부처의 정책을 주도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고 한다. 여기에는 그동안 청와대의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이 맡아온 일부기능까지도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오명 과기부 장관은 임명직후부터 바로 이런 정부 조직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 임명됐다는 안팎의 평가를 받았다. 본인도 언론 인터뷰에 이것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입각 후 김태유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의 사의표명이 우연의 일치만은 아니라는 얘기가 나온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일 것이다. 기술부총리제 도입은 현실적으로 가장 무난한 선택인 것으로 보인다.
전자정보통신이 급부상한 80년대 이후 지금까지 3부처간에는 관할영역 다툼과 함께 조직 재정비론이 끊이지 않았다. 이 다툼은 선의의 측면도 없지 않았지만, 한 부처에서 특정분야의 정책을 내놓으면 이에 뒤질세라 다른 부처가 뒤따라 유사정책을 발표하는 식의 업무 중복이 비일비재했다는 점에서 국력낭비요, 예산소모라는 지적을 면치 못했다.
지난해 이공계 기피현상, 중소·벤처기업 활성화, 기술인력 양성 등 굵직한 이슈들에 대해서도 3부처는 협력보다는 ‘밀리면 끝장’이라는 바람몰이식 정책 발표에 치중하는 난맥상을 보여줬다. 차세대 성장동력사업 역할분담을 놓고 지리하게 벌인 다툼은 바로 이런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런 와중에서 한때 거론된 것이 산업부총리제다. 산자부장관을 부총리로 승격시켜 차세대 성장동력 구현사업에 새 추진력을 부여케하고 제조업 공동화나 내수진작 과제 등도 함께 해결해보자는 의도였다. 수출호황등으로 탄력을 받던 산업부총리제는 부안사태 등으로 수그러들고 말았다. DJ정부때도 IT·벤처붐과 함께 정보통신부총리제 도입이 거론됐으나, 동시에 세계적 추세에 맞춰 정통부를 폐지해야 한다는 역풍을 만나면서 무산됐다.
3부처를 기초연구, 산업육성, 규제·관리라는 큰틀에서 재편하겠다는 정부의 복안은 참여정부가 들어서고 청와대에 정보과학기술보좌관제가 신설되면서 일부 수용되는 듯했지만 실제로는 그리 큰 성과는 거두지 못한 것 같다.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3부처의 업무중복과 조직 비효율성 문제는 앞으로도 조직의 통폐합이나 재편과 같은 시스템 정비를 통해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3부처의 업무는 두부 자르듯 구분할 수 없는 전자정보통신 분야를 함께 다룬다는 물리적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3부처간에는 또한 오래전부터 통용돼 온(일부에서는 부처이기주의로 표현하지만) 구조적이고 관행적인 의례들도 내재돼 있다.
산업부총리나 정통부총리가 아닌, 기술부총리제로의 낙착이 다분히 현실적 대안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것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이다. 오명 장관은 80년대의 차세대 성장동력이라 할 수 있는 전자공업입국론과 오늘날 IT강국의 기초를 다졌고 여러번의 입각 경험까지 가진 ‘경륜’ 있는 분이다. 또 이미 언론을 통해 부각됐듯 이희범 산자부장관, 진대제 정통부장관의 고교 및 대학의 같은 과 직속 선배다. 오 장관이 가진 이런 ‘특별한 힘’은 아직은 한국사회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선순환적 능력을 갖는 것도 사실이다.
즉, 기술부총리제의 성패는 직제상의 특성도 특성이려니와 오 장관의 경륜이나 특별한 힘에 좌우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다는 얘기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나라가 한단계 더 높은 과학기술강국, IT강국을 지향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런지 모른다. 기술부총리제를 앞으로 관심있게 지켜볼 일이다.
<서현진 디지털경제부장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