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세계 IT업계에 조용하지만 의미심장한 사건이 있었다. 삼성과 소니의 위상 변화가 그것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4분기에도 사상 최고의 기록을 경신하며 세계의 부러움을 샀다. 반면 소니는 최고경영자가 최악의 경영인으로 선정되는 수모를 당했다. 더군다나 소니는 지난해 삼성전자와 LCD사업 합작으로 일본내에서조차 서러움을 겪기도 했다.
불과 수년전까지만 하더라도 소니는 단연 세계 전자업계의 스타였다. 전후후무한 워크맨 신화를 비롯, VCR, TV, 캠코더 등 숱한 히트상품을 만들어냈다. 전자제품에 관한한 소니 브랜드는 세계 최고의 명품으로 인정받았다. 게다가 소니는 동양에서 가장 글로벌 스탠더드한 기업이기도 했다. 소니는 20세기말 세계 전자업계의 표상이었다.
그러나 21세기가 시작되면서 소니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매출과 수익면에서 삼성의 추격을 받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2002년에는 추월까지 당했다. 마침내 작년에는 사실상 삼성에게 전자분야 최고 자리까지 내주고 말았다.
물론 소니는 아직까지도 세계 최고의 브랜드와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또 언제든지 최고의 기업으로 컴백할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하지만 20세기와 달리 21세기에는 소니가 차지했던 화려한 명성과 위상이 빛을 바랬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삼성과 소니는 과연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길래 이같은 변화를 겪는 것일까.
소니는 그동안 세계 최고만을 고집했다. 세계 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는 게 창업주의 철학이었다. 소니는 그래서 원천기술과 부품·소재까지 직접 만들었다. 알파부터 베타까지 직접 만든 최고의 것들로 완제품을 만들었다. 당연히 세계 최고의 품질이었다.
삼성 또한 이 문제에 관한한 소니와 별반 다르지 않다. 삼성도 끊임없이 가능한 직접 세계 최고의 부품과 완제품을 직접 만들려했으며 오랜 산고끝에 마침내 성공을 거두고 있다.
삼성과 소니의 차이점은 과연 무엇일까. 한마디로 변화에대한 대응방식이다.
토인비는 인류역사가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고 했다.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소니는 그만큼 변화에대한 두려움도 컸다. 새로움에대한 도전보다는 적응에 안주했다.
세계 최고품질의 브라운관과 베가TV, VCR라는 히트작을 만들어낸 소니지만 워크맨과 캠코더 이후에는 마땅한 신상품을 개발해내지 못했다. 삼성이 액정디스플레이(LCD)와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을 집중육성할 때도 소니는 브라운관에 매달렸다. 삼성이 CDMA와 GSM방식 휴대폰으로 세계조류에 편승할때 소니는 그들만의 리그인 PHS 단말기에 안주했다.
소니라고 변화를 추구하지 않은 게 아니다. 소니는 음악,영화,게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변신을 추구해왔다. 소위 ‘소니 스타일’이라는 게 그것이다. 그러나 소니 스타일은 엄격히 말하면 새로운 기술, 새로운 상품에 대한 도전이라기 보다 기존기술을 시대변화에 맞추어 나가는 순응 내지는 적응에 가까웠다. 새로운 기술로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내는 소니의 본질에 소홀한 것이다.
결과는 소니의 참패였다. 애니콜이 워크맨의 명성을 대체했고 LCD와 PDP가 베가 브라운관의 자리를 대신해버렸다.
사실 이 모든 문제의 한편에는 CEO가 있다. 소니는 창업동지였던 초대와 2대 CEO만이 엔지니어출신이었다. 소니의 신화는 이 두사람의 엔지니어가 치열한 도전정신으로 개척해냈을 뿐이며 3대 이후에는 결실을 따먹기에만 급급했다. 소니와 자리를 맞바꾼 삼성전자가 반드시 유념해야할 타산지석이다.
<디지털산업부 유성호부장 shy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