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개혁이 필요한 IT시장

 고속도로 자동요금징수시스템 구축사업을 둘러싼 SI업체들간 공방전이 최근 사회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아직 검찰조사가 끝나지 않았지만 외부에서 방해전파를 발사해 경쟁업체의 시험을 방해하는 등 사건내용만 보면 마치 냉전 기간 중 미국과 러시아의 정보원들이 벌이는 첩보전을 방불케 한다. 이에 앞서 1년 전에는 똑같은 사업에서 경쟁업체의 시험차량 운전자를 매수해 교통사고를 위장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검찰 고소로 이어진 이번 사건은 SI시장에서 업체간 경쟁이 이미 통제할 범위를 넘어서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이전투구식 경쟁이 SI시장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IT프로젝트가 벌어지는 현장 곳곳에서 먹느냐, 먹히느냐식의 살벌한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진다. 경쟁이 치열한 만큼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입찰에서 떨어지면 상대방 흠집내기가 본격화된다. 자격 시비에서 부터 로비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다. 그러다 보니 IT시장은 연일 상대방을 비난하는 흑색선전이 난무한다.

 입찰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는 바로 가격이다. 대부분의 공공기관을 비롯한 기업에서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려 하기 때문에 당연히 최저입찰제를 선호한다. 일례로 시스템공급업체들은 우리나라의 가격이 세계에서 가장 저렴하다고 은근히 주장한다. 실제 정상가격에서 70%에서 80% 할인된 가격으로 납품되는 게 현실이다. 출혈경쟁인 셈이다. 하지만, 시스템공급업체가 손해를 보고 있다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비록 공급 당시에는 손해를 보겠지만 나중에 유지보수료 등으로 보전한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다.

 시스템생산업체에서 수요자까지 이르는 동안 유통단계는 총판과 딜러 등 적어도 3단계에서 많게는 5단계까지 거친다. 한 거래가 성사되면 알게 모르게 3배에서 5배에 달하는 추가매출이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IT시장이 실체보다 과대평가되고 있는 이유중의 하나다.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시스템공급업체와의 친소관계가 회사매출과 직결된다. 전략적으로 유착이 불가피하다. 대형시스템 공급업체의 유통채널 중 상당 수를 그 회사 출신이 운영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투명한 거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앞서 거론한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나라 IT시장에는 SI산업이라는 옥상옥이 있다. 재벌그룹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그들을 거치지 않고서 시스템을 납품하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렵다. 우수한 국산 솔루션이 있어도 그들이 선택하지 않으면 생존할 방법이 없다. 중소전문업체들은 철저히 갑과 을의 관계다. 가장 첨단의 IT산업이 복마전으로 비유되는 건설업과 비교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도 SI업체들 스스로 부끄러운 줄 모른다.

 이 같은 IT시장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업들의 투명경영을 가능케 하는 핵심 툴인 IT가 막상 시장에서는 가장 불투명하게 거래가 이루어지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고 있는 셈이다.

 연 초 IT산업을 강타한 납품비리사건이나 경쟁업체의 고소·고발 사건 등으로 IT산업의 치부가 이제 하나 둘씩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드러난 상처는 그만큼 치유하기도 싶다. 지금 우리나라 정치나 사회 각 부문에서는 개혁을 위한 고통이 뒤따르고 있다. IT시장에서도 당연히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앞으로 한국의 경제를 책임질 미래 성장동력으로서 IT산업 경제주체들의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할 때다.

<양승욱 컴퓨터산업부장 swy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