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멕시코의 선택

 지난 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되면서 국내 IT기업들의 멕시코 진출이 러시를 이룬 적이 있었다.저렴한 노동력과 미국 시장 진출의 교두보 확보라는 측면에서 멕시코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다.특히 멕시코 정부가 북부에 조성한 경제특구인 ‘마킬라도라’에는 80년대 중반 이후 외국 자본에 대한 각종 투자 제한 조치가 해제되면서 외국 자본의 진출이 봇물을 이뤘다(원래 ‘마킬라도라’는 미국 기업의 하청 공장 노릇을 하는 멕시코 기업들을 절구통에 붙어 있는 옥수수 가루에 비유해 냉소적으로 부르던 이름이다).

NAFTA의 발효와 ‘마킬라도라’로 상징되는 멕시코의 경제 성장에 힘입어 90년대 멕시코는 단순 하청경제라는 한계에도 불구 북남미 지역의 공장 역할로서 전혀 손색이 없었다.이런 멕시코 경제에 중국이란 역풍이 불어닥친 것은 지난 2000년대 전후.여기다 90년대 중반 이후 시작된 임금 상승과 페소화의 강세로 저임금,하청 생산에 의존해오던 멕시코 경제의 매력은 한순간에 빛을 바랬다.중국 쇼크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는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대략 40만명에 달하는 일자리가 중국으로 넘어갔고 2002년 한해에만 58억 달러에 달하는 시장을 상실했다.급기야 지난 2001년 12%에 육박했던 멕시코 제품의 미국 시장 점유율(수입 제품)은 지난해 10%선까지 하락했고 미국 제2의 수출국이란 명예는 중국에 넘어갔다.

그러나 과연 멕시코에 희망은 영영 사라진 것일까.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 최근 보도에 따르면 멕시코는 중국 쇼크의 악몽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멕시코 기업들이 중국 쇼크를 저임금·단순 하청 경제에서 벗어나는 지렛대로 삼고 있는데다 정부의 기업 친화적인 정책이 효과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우선 단순 조립 생산에만 만족해온 멕시코 기업들이 중국과의 저임금 경쟁으로는 더 이상 승산이 없다고 보고 하이텍크 제품 생산 체제를 본격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델·노키아등의 하청기업이었던 ‘자빌 서킷’사가 대표적인 모범 사례.이 회사는 주요 고객들이 중국으로 발길을 옮기면서 생산량이 40% 이상 격감해 위기를 맞았다.하지만 이 회사 경영진들은 미국에 이웃한 지정학적인 특권만 잘 활용한다면 얼마든지 돌파구를 마련할수 있다고 믿었다.미국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고객들의 요구 사항에 탄력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를 위해 회사는 생산 라인을 단순 임가공 위주에서 하이테크형 제품 생산 체제에 맞도록 유연하게 바꿨다.노동자들의 작업 형태도 단순 반복 작업에서 여러 작업을 동시에 처리하는 시스템으로 혁신했다.이같은 생산 현장 유연화 작업이 성과를 거두면서 생산 제품이 무려 600여개로 늘어났다.또 충성도가 낮은 직원들의 높은 이직률을 낮추기 위해 복지 시설을 개선하고 생산 현장에 민주적인 절차를 도입,직원들의 사기를 높였다.

멕시코 정부의 기업 친화적인 정책도 경제 회생을 도왔다.△근로세 및 법인세율 인하 △비NAFTA국가로 부터 수입되는 제품의 관세 인하 △자치단체의 기업에 대한 토지 제공 △연구 개발비 대한 세액 공제 등 조치가 취해졌다.이같은 기업 친화적인 정책 덕분에 스웨덴 가전업체인 일렉트로룩스가 냉장고 공장을 멕시코로 이전하고 GE는 멕시코 공장의 고용 인력을 증원했다.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직접 투자(FDI)는 전년 대비 13% 이상 증가했으며 멕시코의 국가 경쟁력 순위는 지난해 53위에서 47위로 상승했다.아직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중국 쇼크에서 벗어나기 위한 멕시코의 선택이 서서히 빛을 발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국제 기획부 장길수부장 ks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