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통신업체를 가만 놔둬라

중국보다 기업하기 어려운 곳이 한국이다. 하루하루 현실과 부대끼는 기업인들의 말이니 엄살은 아닐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통신사업은 특히 정도가 심하다. 걸핏하면 규제요, 툭하면 징계다. 해당 부처의 규제도 신경 쓰이는 판에 언제부터인가 ‘시어머니’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주무부처인 정통부도 모자라 공정위, 재경부까지 나선다. 훈수도 하고 징벌의 목소리도 높인다. 그뿐인가. 정치권(국회)도 사사건건 딴죽이다. 최근에는 막강한 시민단체들도 압력에 가세한다. 통신사업자들로선 물 샐 틈 없는 봉쇄망에 포위된 형국이다.

 이들의 입김이 미치는 영역도 다양해졌다. 기업 윤리나 지배구조 등은 이미 사정권에 들어간 지 오래다. 요즘에는 요금 결정에도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통신사업자의 마케팅 방향이나 구체적 기법도 도마에 올린다. 이런 분위기라면 통신업체 경영진은 할 일이 별로 없어 보인다. 온갖 군데서 시키는 대로 적당히 몸조심하는 것이 상책이다. 오죽하면 “이럴 바에야 차라리 통신업체를 국유화하라”는 비아냥이 나오나.

 통신요금이 대표적이다. 가격이야말로 기업으로선 가장 민감한 정책이다. 자신들의 수익성, 마케팅 능력, 재투자 여력, 소비자 반응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여기서 실패하면 시장에서 곧바로 퇴출이다. 어리버리 결정할 기업은 하나도 없다. 시장과 소비자가 그리 어리숙하지도 않다. 조금이라도 폭리의 기미가 있으면 외면한다. 의외의 저가격이면 호응도가 다르다. 게다가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횡포는 정부가 견제한다. 후발주자 ‘죽이겠다’며 약탈적 가격을 들고 나오면 정통부가 불허한다. 견제와 균형의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통신요금 결정권을 누가 갖느냐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재경부 등에선 물가관리 차원에서 툭하면 통신요금 인하를 검토한다고 밝힌다. 표로 먹고사는 정치권도 수시로 요금 인하를 추진한다고 발표한다. 가장 센 건 역시 시민단체다. 정부와 국회도 그들의 눈치(?)를 보는 판에 기업들은 죽을 맛이다. 외국에 비해 턱없이 비싸다느니 폭리 구조가 정착된다느니 하며 압박을 가한다. 거절할 수 없는 압력 수준이다. 이를 외면하면 자칫 기업의 도덕성까지 비하한다.

 급기야 정부 일각에서 통신요금 책정시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공청회를 열고 여기서 수렴된 의견을 반영한다는 안을 내놓았다. 이쯤되면 통신업체 경영을 누가 하는지 도무지 헷갈린다. 기업에 물가나 소비자 서비스 차원의 가격 인하는 고려사항이지 절대기준이 아니다. 경제적 판단에 정치적 기준이 개입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통신사업자 가운데는 분명 막대한 수익을 내는 업체가 있다. 그렇다고 요금 인하로 이를 사회에 환원하라는 단선적 주장은 곤란하다. 아직도 대다수 통신업체는 ‘연명’수준에 허덕이고 있다. 지배적 사업자가 내리면 이들도 따라 내려야 하지만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통신시장은 지금 그만큼 절박하다. 수익을 많이 내는 기업에는 다른 접근을 하자, 과감한 투자를 유도해 연관사업을 살찌우고 고용을 창출토록 하자는 것이다. 이른바 선순환구조를 확립하는 것이 먼저다. 기업이 요금 인하말고도 국가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규제당국도 정통부를 믿고 맡겨라. 기업들도 욕먹으며 장사해서는 장기적으로 득될 것 없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정통부도 통신에 관한 한 최고 관료집단이고 노하우도 있다. 경제부처로서 자기 정체성도 갖고 있다. 국민 의사에 반하는 정책을 펼 이유가 없다. 통신업체와 정통부를 좀 놔둬라. 그들은 여태껏 신화를 창조했으면 했지 국민 경제의 파탄을 가져온 집단이 아니다.

 <이택 편집국부국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