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를 광기로 뒤덮었던 17대 총선이 끝났다. 선거가 끝나면 모든 것이 다 사라지거나 해결될 것처럼 보였지만 선거가 끝난 지금도 선거 이전과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온 국민이 걱정하고 있는 경제난 또한 마찬가지다.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대통령을 뽑는 대선처럼 변질돼 이번 총선에서는 누가 우리 지역에 출마했는지는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졌다. 매일같이 미디어를 통해 눈에 띄는 것은 우리 지역의 후보가 아닌 각 당의 얼굴 마담뿐이다. 국민은 국회의원 후보들의 얼굴과 이름도 모르고 그냥 각 당의 대표선수만 기억한 채 투표를 해야 하는 흔치 않은 경험을 했다. 그리고 승부는 결정됐다. 그리고 그 결정에 의해 승자와 패자가 갈렸다.
혹자는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예전과 마찬가지로 위대한 국민의 심판이라고 선전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어떤 분석이 나오더라도 정치인들처럼 이번 선거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없다. 승부가 결정됐다는 것은 정치라는 특정 영역에서의 일이다. 정치를 제외한 전 분야, 특히 경제는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승부다.
국민에 의해 선택된 선량들은 새로운 각오를 다져야 한다. 3류의 정치가 또다시 우리 경제를 망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선거가 시작되면서 언제부터인가 신성장동력, 국민소득 2만달러, 이공계 살리기 등 우리의 장밋빛 미래를 보장해줄 정책들은 소리소문없이 자취를 감췄다. IT출신 명망가들을 국회로 보내자는 목소리도 선거운동기간에는 노풍이니, 탄핵심판이니 국민의 생활과는 전혀 상관없는 정치쟁점들에 밀려 자취를 감췄다.
선거가 끝난 지금 사그라져 버린 불씨들을 하나 둘씩 다시 지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여당의 몫도, 야당의 몫도 아니다. IT선량을 기대하는 것은 중국의 성장동력이 테크노크라트에서 비롯됐다는 평가를 받는 것처럼 그들의 경륜과 경험이 경제를 활성화하고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아직도 IT를 하나의 산업 정도로 치부하는 선량이 있다면 문제다. 정보화시대에서는 정보화와 가장 연관성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전통산업마저도 그 경쟁력의 원천은 바로 IT에서 비롯되고 있다. IT의 경쟁력은 산업경쟁력, 그리고 국가경쟁력과 직결된다. 우리가 국민소득 2만달러를 기대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우리에게 최고 수준의 IT인프라가 있기 때문이다. 여야 의원 모두 IT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IT산업을 육성시킬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우리 경제가 IT제품의 수출만으로 명맥을 이어온 지 얼추 2년이 넘었다. 그러나 내수가 뒷받침되지 않는 수출기반은 언제 무너질 지 모른다. IT 수요창출만이 우리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지금은 첨단제품에 대한 특소세 면제나 보조금 지급 등 지금과는 정반대의 전향적인 정책을 펴는 것도 고려해 봄직하다.
너도 나도 이공계 공화국을 외쳤던 우리가 과연 IT출신, 아니면 이공계 출신을 몇명이나 의원배지를 달게 했느냐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물론 많은 IT출신들이 국회에 입성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비전문가들보다 나은 법과 제도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뽑힌 선량 299명 모두 IT적인 사고를 갖추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다. 선량들 모두가 IT국회의원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17대 국회가 16대와 차별화할 수 있는 핵심이 바로 IT라는 것을 잊지 말자.
<양승욱 컴퓨터산업부장 swy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