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대결이 실종됐다고는 하지만 17대 총선은 그래도 이공계 부문에서는 적지 않은 관심을 불러 모았다. 성과라면 이번 선거에서 각 정파들이 이공계 기피현상의 중심에 과학기술인에 대한 사회적·정책적 ‘천시’가 도사리고 있음을 인정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래서 각론은 다르지만 저마다 큰 틀에서 과학기술인 우대정책과 연구개발 예산의 증대 등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선거판에서 정치적 이해가 다른 정파들이 이공계 문제에서 만큼은 눈높이를 맞췄다는 것은 어쨌거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공계 문제가 처음 대두된 것은 40여년 전 3공화국 때부터다. 상황도 오늘날과 아주 비슷해서, 정부가 과학기술이 경제개발의 기초라고 외쳐대지만 기초를 다져줄 과학기술자는 태부족이었다. 이공계 대학을 나와도 취직할 연구소나 공장 찾기가 하늘에 별따기였다. 이런 난국의 극복을 위해 국책 연구소의 효시격인 KIST가 세워졌다. 부족한 과학자는 해외 과학자 유치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만들어 모셔왔다. 덩달아 여러 과학기술 정책들이 쏟아지고 관련 예산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과학기술부의 전신인 과학기술처의 출범은 이런 배경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60년대 이공계 문제가 오늘날과 다른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60년대에는 정부가 문제 해결에 직접 나섰지만 오늘날은 그 일을 정치권이 맡게 됐다는 점일 것이다. 엄밀하게 따지면 ‘떠맡겨 졌다’는 표현이 더 옳을 것이다. 그동안 정부의 이공계 대책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장관이 바뀔 때마다, 그것도 모자라 매년 대통령 업무보고 때마다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매번 정책에 대한 신뢰성은 땅에 떨어지고 추진력 자체는 겉돌기 일쑤였다. 이제는 정치권에 ‘떠맡겨질 수밖에 없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17대 국회가 개원도 하기 전에 벌써부터 정치권의 공약 실천 여부가 우려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이런 우려를 사전에 차단하고 공약 실천의지를 보여주려한 흔적들은 있다. 대표적인 게 이공계 출신 비례대표의 공천이다. 지역구와 달리 비례대표 의원의 전문성과 정치적 영향력은 그 정파의 정책 실현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다. 그런 점에서 집권여당인 우리당이 이공계를 대표하는 전문가를 비례대표 2번에 올려놓은 것은 파격에 가까운 일이다. 여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한나라당도 이공계 출신 비례대표를 당선시켰다.
그런데 이런 의지만으로 17대 국회에서 과연 이공계 문제가 풀릴 수 있을까. 비례대표를 통한 순수 이공계 출신의 국회 진출은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다. 극소수이지만 15대에서도 있었고 16대에서 있었다. 하지만 ‘큰 뜻’을 품고 국회에 들어간 의원들의 모습을 보라. 일단 비례대표의원은 대의정치의 기본인 ‘머릿 수’에서 크게 밀린다.
과기정위 같은 상임위원회는 대부분 노련한 지역구 출신 정치인들로 채워진다. 결국은 자신의 능력이 거수기 역할에 그치고 마는 현실 정치의 높은 벽에 절망하고 만다는 것이다. 이공계 문제를 떠맡은 국회내에서 조차 이공계 분야 입법활동이 천시당하는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할수 있을 것인가. “대선때 소속당 대선후보의 (IT에 친근하다는) 이미지메이킹 역할밖에 할 일이 없었다”라는 IT분야 기업가 출신 한 전직의원의 고백은 더 이상 충격적인 일이 못된다.
국회는 입법활동의 본산이다. 이공계 문제가 국회에 떠맡겨진 것은 입법이라는 강력한 해결방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 나타난 민의는 정치가 변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용도폐기되는 이공계 의원들의 모습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아야 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이공계 당선자들도 현실 정치의 벽을 과감히 깨뜨릴 수 있는 소신이 필요할 것이다.
◆서현진 디지털문화부장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