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의 해외 유출 문제로 미국 정가와 산업계가 벌집 쑤셔놓은 듯 시끄럽다. 주요 기업들이 콜센터나 IT프로젝트를 인도·멕시코 등 외국 기업에 아웃소싱하거나 일부 부서를 해외로 이전하는 오프쇼어가 심해지면서 이 문제가 11월 열리는 미국 대통령 선거의 핫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아웃소싱이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인다는 주장과 일자리의 해외 유출을 초래한다는 주장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아웃소싱과 관련된 기업 인수합병, 콜센터 이전 등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또 인도, 중국, 필리핀 등 국가들이 선진국의 아웃소싱 시장을 놓고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있다. 물론 현재까지 아웃소싱 분야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국가는 인도다. 타타컨설팅·인포시스·위프로 등 IT분야 간판 주자들의 활약상에 힘입어 인도는 일찍이 아웃소싱 강국으로 자리를 잡았다.
흔히 인도의 대표적 IT밀집지역 하면 방갈로르를 떠올린다. 그런데 최근 미국 IT업계의 상징인 IBM이 일자리의 해외 유출이라는 미국내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인도 3위의 콜센터 업체인 ‘닥시 e서비스’ 인수 방침에 이어 웨스트 벵골주 주도인 콜카타(옛 캘커타) 지사의 고용인력을 현재보다 2배 이상 많은 4000명선까지 확대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지며 웨스트 뱅갈 지역이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IBM 인도법인측은 방갈로르 지사에 이어 콜카타 지사를 인도 IT사업의 전략적 요충지로 육성하겠다는 속셈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웨스트 벵골주와 콜카타는 인도 역사상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식민지 시대의 수도였던 콜카타는 영국 식민지 시대의 상징과 같은 곳인데 우리에겐 테레사 수녀가 빈민 선교를 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영국의 악명 높은 벵골 분리 정책 때문에 일찍부터 민족주의, 공산주의 등 각종 사회개혁 운동이 분출했다. 이런 탓에 지금도 진보적인 색채가 뚜렷하다. 아직도 활개를 치고 있는 ‘낙살’이란 좌익 게릴라 조직이 태동한 장소가 바로 웨스트 벵골이란 것에서 알 수 있듯 콜카타와 웨스트 벵골은 좌익 운동의 본산이기도 하다.
이같은 지역적인 특성을 반영, 웨스트 벵골주는 지난 77년부터 마르크스주의 이념 정당인 인도공산당(CPI-M)이 근 30년 권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주로 힌두교계 민족주의 정당과 다른 수많은 정당들 간 연립 형태로 권력이 창출되고 있는 인도 타지역과 비교하면 아주 대조적이다. 이 같은 정치적인 배경 탓에 웨스트 벵골은 일찍이 토지개혁이 단행됐고 자영농에 기반을 둔 농촌경제가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CPI-M의 정강정책을 추종하는 노동운동 세력이 파업 및 태업을 일삼는 바람에 반기업적인 정서가 강했다. 당연히 해외 투자기업들의 기피 대상 1호였다.
그렇다면 이제와서 이런 지역적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IBM이 웨스트 벵골의 심장부인 콜카타에 깊숙히 진출하려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이유는 비교적 단순하다. CPI-M의 정치적 입장변화 때문이다. 주정부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일자리 창출이 중요하다고 보고 노동자들의 파업 자제를 유도하고 IT기업들에 대한 각종 유인책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노동운동 역시 이 같은 분위기에 공감, 과거보다 파업을 자제하고 있다. 여기다 풍부한 엔지니어 인력, 다른 지역보다 훨씬 저렴한 임금 등 여러 요인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며 IBM의 구미를 당긴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웨스트 벵골의 한 정부 관리는 “IBM이 콜카타의 저렴하면서도 유능한 인력풀에 매력을 느낀 것 같다”며 웨스트 벵골의 매력을 호소하고 있다. 아무튼 좌익적 색채가 짙은 인도 벵골 주정부의 방향 전환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때인 것 같다.
<장길수 국제기획부장 ks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