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통신·방송 융합의 파괴력

이제 통신과 방송의 융합(컨버전스)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통신쪽이나 방송쪽이나 이 대세를 당연시 여긴다. 다만 통방융합의 파괴력이 과연 얼마나 될지, 그리고 둘중 어느 주체가 이 새로운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을 것인가에 관심을 쏟는 분위기다. 통방이니 방통이니 하면서 명칭을 둘러싼 샅바싸움부터 하는 것을 보면 정통부와 방송위가 ‘통방융합의 힘’을 분명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통방융합의 파괴력은 이미 우리 주변 곳곳에서 발견된다. 전체 1100만곳에 달하는 초고속인터넷 보급가구 가운데 케이블망으로 TV를 보면서 인터넷을 할 수 있는 가구는 무려 34%에 이른다. 또 휴대폰에서 주문형비디오나 각종 동영상까지 시청 가능한 서비스도 등장했다. 인터넷으로 시작된 방송과 통신의 융합은 이제 휴대전화와 방송이 결합한 DMB, VoIP 방송, 디지털케이블TV와 데이터 방송 등의 구현으로 절정에 이를 전망이다.

 이 시점에서 통방융합이 주목을 받는 것은 신규 융합시장의 폭발력이 예상외로 클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멀티미디어·엔터테인먼트가 결합된 통방융합서비스의 영역은 좀처럼 활로를 찾지 못하는 국내 IT 산업에 새로운 성장엔진을 제공해 줄 것으로 점쳐진다. 초고속인터넷ㆍ이동전화(CDMA) 등 신규 통신 서비스는 지난 IMF 관리체제 조기 탈출의 일등공신이었다. 통방융합서비스 역시 정체와 포화에 허덕이는 현재의 국면타개를 위해 IT산업 가치사슬 최상단에서 전후방 연관산업을 견인해줄 것이라는 기대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이미 점화된 통방융합 바람의 성패는 과연 이를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몰고 가는냐에 달려있다. 해답은 시장과 소비자들의 요구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방통이든 통방이든 소비자들은 관심없다. 보다 싼 가격에 나의 니즈를 만족시켜주면 그만이다. 교훈도 가까이 있다.

 지난 몇년간 지리한 소모전을 벌이고 있는 디지털TV 전송방식 논쟁이 바로 그것이다. 정작 소비자들은 뒷전으로 밀려난 채 이해당사자들의 지리한 영역싸움 때문에 국가적 손실도 엄청났다. 소비자들이 원한다면, 국가 산업 전반에 득이 된다면 맞는 방향이다.

 지금까지 이어졌던 정부부처와 방송계 이해집단의 영역 다툼이 소비자들의 요구와 산업발전의 명분보다 앞설 수는 없다. 이런 점에서 최근 정통부와 방송위가 그동안의 소모적인 논쟁에서 벗어나 신규 디지털방송 서비스를 조속히 도입하자는 대원칙에 일단 합의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그나마 경쟁우위를 보이는 세계 IT시장에서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선 통방 융합에 대한 신속한 대응은 절실하다. CDMA가 GSM과 더불어 세계 이동통신 시장을 양분하게 된 것도 결국 우리나라가 CDMA를 먼저 도입함으로써 이뤄진 ‘타임 투 마켓’이 주효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현재 보유한 모든 리소스를 모은다면 세계 최초의 위성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도입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위성DMB 서비스는 물론 관련 장비·단말기 등의 분야에서 확고한 주도권을 선점할 수도 있다. 똑같은 경우가 VoIP, 데이터 방송 등 신규시장에서도 수두룩할 것이다.

 유사이래 규제에 익숙한 법과 제도가 시장과 기술의 진보보다 앞서간 적은 없었다. 규제권을 쥐겠다는 정부기관이나 눈앞에 이익에 급급한 관련업계의 기득권 지키기가 큰 이유였다. 이로인한 엄청난 기회손실비용에 늘 후회하지만 항상 그래왔다. 우리에겐 이제 시행착오를 되풀이 할만한 시간과 돈도 없다

 <김경묵 부국장대우·IT산업부장 kmkim@etnews.co.kr>